시민단체가 본격적인 시험대에 올랐다. 사회변혁의 주체로서 확실한 자리매김을 할 것인가, 다가오는 4·13총선에서 과연 ‘선거혁명’의 견인차가 될 것인가.
시민들의 폭넓은 지지를 바탕으로 ‘유권자심판운동’에 시동을 건 시민단체들이 이 운동을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갈지 관심을 모은다. 이미 참여연대 환경연합 경실련 등 한국의 대표적 시민단체들이 주도하는 유권자심판운동은 한국정치의 미래를 바꿀 도도한 흐름으로 일단 연착륙하는데는 성공했다는 평가다.
시민단체들은 선거 때마다 나름대로 운동을 펼쳐 왔다. 1단계는 91년 지방선거 기간 중 경실련 흥사단 YMCA 등을 주축으로 한 공명선거실천협의회(공선협)의 선거감시운동이었고 2단계는 95년 지자체 선거를 기점으로 펼쳐진 정책비교 캠페인.
그러나 이들 운동은 국민의 폭넓은 공감대에도 불구하고 직접적 호응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했다. 정치권의 밀실공천과 금권타락선거 등 구태도 여전했다. 이런 현실을 타파하기 위해 시민단체들이 3단계로 빼든 ‘칼’이 바로 유권자심판운동인 셈이다.
따라서 운동의 폭과 영향력에서 이전의 운동과는 양상이 판이하다. 470여개 시민단체의 공신력을 토대로 형성된 총선연대의 폭발력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시민운동가들조차 놀랄 정도다. 특히 ‘정치적 무력감’에 빠진 유권자들이 새로이 참여의식을 일궈가고 있어 시민단체들이 이들을 묶는 ‘핵’의 역할만 제대로 한다면 ‘무혈혁명’까지 이뤄낼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시민단체들이 국민의 폭발적인 지지를 이끌어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물론 ‘IMF국면’에서 기존 리더십과 ‘구체제’가 붕괴했음에도 불구하고 ‘개혁의 무풍지대’로 남아 있던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 진원(震原)이다. 여기에 소액주주운동 동강살리기운동 등 그동안 시민단체가 쌓아온 ‘관록’과 시민들의 신뢰가 덧붙여져 ‘모두 바꿔 열풍’으로 확산됐다는 것이 일반적인 분석.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단체가 유권자의 참여를 지속적으로 이끌어내 ‘시민주권시대’를 열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우선 ‘선거혁명’을 목표로 하는 운동단체들 사이에, 그리고 중앙과 지역조직 사이에 연대와 역할분담을 어떻게 적절히 ‘조율’해내느냐는 과제가 남아있고 순조롭게 이뤄질지도 현재로선 불확실하다. ‘불법운동도 불사한다’며 강경노선을 천명한 총선연대가 이번 운동을 주도하는 과정에서 경실련과 공선협 등 보다 ‘온건’한 시민단체들과의 사이에 불협화음이 없지 않았다.
시민단체마다 “방향과 노선이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국민주권의 신장을 위해서라면 선거법개정 등 사안별로 적극 연대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어 그 귀추를 지켜볼 일이다.
본질적으로는 낙천 낙선운동의 특성상 4월13일의 투표 행위를 제외하면 시민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 마련이 쉽지 않은 것도 총선연대로선 고민이다. 각종 서명운동과 집회, 전국버스투어 등의 퍼포먼스를 준비하고 있지만 ‘홍보’를 넘어서 유권자들의 ‘지속적인 참여’를 이끌어내기엔 한계가 있다.
한국정당정치연구소의 박상병(朴床秉·38)연구기획실장은 “그동안 시민없는 시민운동으로 비판받아 온 우리 시민운동의 취약한 기반을 고려할 때 이같은 ‘붐’이 거품처럼 사그라들 수도 있다”며 “이번 낙선운동 자체의 결과에 연연하지 말고 시민운동 전체의 내실을 기하는 쪽으로 노력하는 것이 시민단체의 과제이자 ‘지속적인 선거혁명’으로 가는 방법”이라고 진단한다.
그런 점에서 최근 참여연대와 환경연합, 녹색연합 경실련 등 이번 운동을 주도하는 단체들에 자원봉사와 후원금 지원을 약속하는 시민들이 예전보다 평균 2∼4배가량 증가한 것은 매우 주목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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