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개 음식이란 누군가와 함께 먹어야 맛인데 혼자 먹어도 먹을 만한 게 면 종류다. 내게는 특히 냉면이 그렇다.
냉면은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그 자체로는 몰개성한 음식이다. 자유로운 음식이라고도 할 수 있다. 여럿이 한 상을 받아도 저마다의 입맛에 따라 맛을 달리하여 먹을 수 있다. 그래서 일행이 친한 사람일 경우 나는 그의 냉면을 한 젓가락 집적거려 맛을 보곤 한다. 품위없는 버릇이다. 게다가 한술 더 떠 기어코 그에게 내가 맛을 낸 냉면을 맛보게 하는 것이다. 그의 입에서 맛있다!는 감탄사가 나오기를 기대하며.
실망스럽게도 많은 경우 상대방은 한쪽 눈이 감기며 싯, 소리와 함께 혀끝을 내민다. 콧방울을 살짝 누르는 이도 있다. 나도 아직 나보다 더 겨자와 식초를 많이 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가늘고 매끄럽고 차가운 면발의 감촉을 이와 혀와 목젖에 아련히 느끼며 겨자와 식초를 진하게 푼 물냉면을 훌훌 들이키면 순간적으로 일종의 명정 상태에 빠진다. 모든 권태가 깨지고 확 깨어나는 느낌인데 깨어서 예민해지는 게 아니라 그냥 존재가 씻기는 기분인 것이다. 온몸 가득 미각이 곤두선 채.
내 찬장은 누추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겨자와 식초만은 떨어지지 않고 비치되어 있다. 나는 집에서도 냉면을 즐겨 만들어 먹는다. 내 냉면은 만들기가 아주 쉽다. 인스턴트 냉면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주로 청수냉면을 사서 쓰는데 그 면발이 내 입에 맞는다.
내가 최초로 냉면에 매료된 것은 중학교 3학년 때였다. 한동네에 사는 여고생 언니를 따라 광화문의 분식센터에 가서 먹어본 그 냉면! 세상에 태어나 처음 맛본 그 강렬하게 맵고 달고 쫄깃한 맛에 나는 홀렸다.
그리하여 여고생이 되자마자 나는 친구들과 허구헌날 그 광화문통 분식센터 거리를 헤어나지 못했던 것이었다. 점퍼스커트인 교복 벨트를 마무리지 못할 지경까지 먹어야 직성이 풀리게 한 그 냉면에는 상상도 못할 비장의 그 무엇을 가미했을 것 같다.
나이 들어서 만난 친구가 내 또래면, 그리고 그가 서울에서 청소년 시절을 보냈으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그 광화문통의 선다래와 미리내와 풍미당과 당주당 얘기를 꺼내게 된다. 그러면 옛친구를 만난 듯 서로 반가이 목소리를 높이게 되는 것이다.
아, 선다래 미리내 당주당 풍미당, 그 그리운 이름들. 어디로 가버렸는가, 그 집들은? 그 맛을 내던 그 주방 아주머니들은? 그러고 보니 내가 좋아하는 냉면이라는 것은 어딘지 정통이 아니고 격이 떨어지는 것뿐인 것 같다.
황인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