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그대에게 해주려는 것은/꽃꽂이도/벽에 그림 달기도 아니고/사랑 얘기 같은 건 더더욱 아니고/그대 모르는 새에 해치우는/그냥 설거지일 뿐./(…)/언덕 새파래지고/우리 모르는 새/저 샛노란 유채꽃/땅의 가슴 간지르기 시작했음을 알아내는 것.’
시인 황동규(62·서울대 교수)가 열한 번 째 시집 ‘버클리풍의 사랑 노래’를 냈다. 97년 ‘외계인’ 이후 3년만이다.
98년 1월부터 반년동안 미 캘리포니아 주립 버클리대에서의 교환교수 생활과 그속에서 자청한 고독, 내이(內耳)의 종양을 제거하며 겪은 병상 체험, IMF 경제위기 속 사회 전반의 고통을 함께 고뇌한 내면의 아픈 울림 들이 50편의 시에 담겼다.
“나의 시는 점점 젊어진다고 자신해요. 시라는 ‘젊은 애인’과 연애하니 내가 젊어지고, 젊은 느낌으로 쓰니 시가 젊어질 수 밖에요.”
그가 말하는 시의 ‘젊음’이란 단지 외형만의 젊은 감각이 아니라 ‘문제가 생겼을 때 우회하지 않는’ 치열한 정신을 뜻한다.
최근 몇 년간의 경제난이 각자의 내면에 가한 무형의 폭력에 대해서도 그는 강한 메시지를 남긴다. 그러나 70년대 정치적 폭력에 저항하는 방법이 그랬듯이, 그것은 직설이 아니라 상징과 비유의 무성한 가지로 엮인다. ‘아들 형제를 아버지가 고아원에 맡긴다/돌아서는 순간/사람 속을 걸어/사람 밖으로 나간다’와 같은 구절이 마음속에 휑한 바람을 남긴다.
그의 시는 나올 때 마다 ‘대중성’과 ‘비평가의 상찬’을 함께 확보하곤 했다. 97년에는 영화 ‘편지’에 그의 데뷔작 ‘즐거운 편지’가 수록되면서, 이 시가 실린 시집 ‘삼남에 내리는 눈’(1975)이 이후 몇 달 동안 수천부씩 팔려나갔다.
그는 “동료 교수들로부터도, 나의 시가 화해나 사랑 고백을 위해 곧잘 쓰인다는 말을 들었다”며 시인으로서의 행복을 살짝 비껴 표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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