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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김미진 作 '자전거를 타는 여자'

입력 | 2000-01-28 19:01:00


데스데모나는 불 옆에서 오셀로가 펼치는 원정(遠征)의 무용담을 엿들으며 그에게 마음을 빼앗긴다. 사나이의 모험. 그 새로운 세계와의 조우는 여인에게 그토록 강력한 자장(磁場)으로 작용하는 것일까.

김미진의 새 장편 ‘자전거를 타는 여자’의 주인공 미목도 다르지 않다.

소심하고 고답적인 남편 곁에서 단조로운 일상을 메워나가던 미목. 그의 앞에 산사나이 하훈이 나타난다. 그가 열어보이는 새 세상은 미목의 가슴에 높은 매그니튜드(震度)의 흔들림으로 남는다.

‘에베레스트 빙벽, 아프리카 오지, 사막, 떠돌아다닌다. 그런 단어들이 가슴에 돌을 던진 것처럼 물결을 일으켰다. …그는 전혀 생소한 세계에 살고 있는 또 다른 인류였다. 그의 영혼은 무슨 색깔일까.’

물론 셰익스피어 ‘오셀로’와의 공통점은 여기까지다. 데스데모나가 불륜을 범했다는 오해를 산 끝에 오셀로에게 목졸려 죽는 반면, 미목은 하훈과 맹목의 사랑에 덧없이 끌려들어가게 되고 종내 남편을 살해하기에 이른다.

소설은 히말라야 로체 정상에서 서바이벌 키트 속의 메시지가 발견되면서 시작되고, 사뭇 흥미로운 극적 장치를 연달아 열어보이면서 속도감을 얻는다. 일간지 기자 인호는 몇해전 조난사한 하훈의 유품에서 정체불명의 여인 ‘MM’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입수하고, 이를 특종으로 기사화하지만, ‘MM’의 신원을 확인하지 못해 애를 먹는데….

작품에서는 산 사나이의 생활에 대한 치밀한 취재의 손길이 느껴진다. 작가는 히말라야 현지 분위기를 체험하기 위해 두 번이나 네팔을 왕복했다고 밝혔다. 말미에 미목이 망원경으로 ‘능선위의 점’을 살펴보는 장면 등 상상속의 화면을 배치하는 솜씨에도 미술을 전공한 작가의 ‘디자인 감각’이 묻어난다.

그러나 아쉬움도 적지 않다. 미목이 거쳐온 억압적인 성장기와 결혼생활에 대해 제법 많은 분량의 설명이 ‘전말기’처럼 펼쳐지고 있지만 이 모든 전말을 한군데 모아 펼치기 보다는, 회상과 대화 속에 자유를 향한 주인공의 갈망을 조금씩 녹여넣는 편이 더 낫지 않았을까.

작품은 김미진의 세 번째 장편이다. 95년 그는 미국 유학생들의 사랑과 갈등을 장편 ‘모차르트가 살아있다면’의 네 장(章)에 잘 균제(均齊)된 조형작품처럼, 혹은 심포니처럼 펼쳐내 화려한 주목을 받으며 데뷔했다. 그 뒤 그는 장편 단편 각각 한 편씩만 선을 보였고, 이번 작품은 장단편을 합쳐 그의 네 번째 소설이다.중앙M&B 펴냄.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