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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칠레작가 아옌데 作 '파울라'

입력 | 2000-01-28 19:01:00


▼'파울라' 이사벨 아옌데 지음/민음사 펴냄▼

어느날 작가의 딸이 마른 장작처럼 쓰러졌다.

식물인간이 된 딸 앞에 선 어머니. 자식이 거짓말처럼 훌훌 털고 일어나기 기원하면서, 그에게 들려줄 긴 긴 이야기를 쓴다. 할아버지대로부터 시작해 가문의 내력, 부모의 로맨스와 자신의 성장기, 이방인으로의 파란많은 삶을.

칠레의 대표적 현대 작가 이사벨 아옌데의 장편 ‘파울라’(전2권)가 발간됐다. 작품 제목은 유전병 ‘포르피린증’으로 투병 끝에 92년 사망한 작가의 딸 이름.

작품이 눈길을 끄는 것은 가슴을 뭉클하게 만드는 모녀의 ‘휴먼 스토리’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가족사 전통을 중시하는 라틴아메리카의 작품 답게 작가는 윗 세대의 삶을, 그들의 권위주의와 기묘한 모럴을 비꼬면서도 그들의 시대와 자신의 시대를 잇는 끈을 놓지 않는다.

게다가 아옌데(家)가 어떤 집안인가. 최근 사회당 정부의 재집권으로 다시 역사의 조명을 받은 살바도르 아옌데 전대통령. 그가 바로 작가의 삼촌이다. 그동안 간결한 기사문으로만 전해져온 쿠데타 당일 상황을 사건 이해당사자의 목소리로 접해보는 경험도 색다른 감흥을 준다.

그러나 한때 잡지 기자로 활동했던 작가는 시대적 배경에 대해 객관적이고 냉철한 시선과 냉철함을 시종일관 잃지 않는다. 사회주의 정권 시대로 얘기를 옮겨오면서 작가는 준비되지 않았던 선거혁명, ‘국민의 반을 적(敵)으로 만들 수 밖에 없었던’ 시대적 정황을 찬찬히 펼쳐나간다.

작가는 33세 때인 75년 군사정권하의 칠레를 떠나 베네수엘라로 이주, ‘영혼의 집’ ‘에바 루나’ 등의 장편을 발표하며 치밀한 문장과 탁월한 역사적 혜안으로 중남미 대표작가 중 한사람으로 떠올랐다.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