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벽두부터 증시가 크게 출렁이고 있다. 세계주식시장의 동조화 현상이 확산되는 가운데 인플레와 금리인상 우려에 따른 미국 주가의 급락이 국내시장의 충격으로 이어지고 있다. 일부에서는 투매현상까지 일면서 대우 외채협상의 성공적 타결이라는 호재에도 불구하고 불안한 장세를 면치 못하는 실정이다.
지난 한 해 한국 자본시장은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룩했다. 주가상승률 80% 이상으로 아시아에서 최고를 기록했는가 하면 99년말 기준 국내증시의 시가총액이 연간 국민총생산액을 초과하는 기록을 세웠다. 이러한 자본시장 활성화는 경제의 조기회복과 구조개혁의 견인차 노릇을 단단히 해냈고 금융위기 극복의 새로운 모델이라는 높은 평가를 국제사회로부터 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주식시장의 놀라운 양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자본시장 선진화를 가로막는 근본적인 취약점들이 여전히 남아 있다. 그중 가장 두드러지는 것이 조급한 투자 마인드다. 우리 주식시장의 거래회전율과 주가변동률은 전세계에서 가장 심한 편에 속한다. 최근 미국주가지수 변동에 비해 2∼3배에 달하는 급등락을 보인 것이 좋은 예다. 이는 다분히 국내 투자자들의 단기 및 투기적 성향을 반영하는 것으로 주식투자에 대한 기본인식이 개선되지 않고서는 자본시장의 내실 있는 안정성장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본시장의 진정한 발전은 증권투자가 중장기적이며 건전한 저축의 방편이라는 의식이 뿌리내릴 때 가능하다.
물론 적당한 열기는 바람직하다. 특히 인터넷과 정보통신 분야의 혁신으로 세계경제의 기본틀이 바뀌는 현시점에서 벤처기업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아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고 환영할 일이다. 활발한 매매활동은 유통시장 발전의 필수조건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투자자들의 관심이 초단기 차익에 쏠리고 생업을 팽개치듯 하루종일 사이버거래에 매달리거나 은행돈을 빌려 주식투자하는 데는 분명히 문제가 있다.
국내자본시장의 체질개선은 개방체제에서 더욱 시급한 과제다. 세계화의 물결 속에 국제간 자본이동이 크게 늘고 있고 지난 한 해 동안 외국인 증권투자자금의 유출입 총액이 777억달러에 달해 외환위기 이전에 비해 급속히 확대되는 추세다. 과도한 자본이동에 따른 경제적 충격을 줄이기 위해서도 효율적인 시장인프라 구축과 더불어 일희일비하지 않는 의연한 투자자세가 중요하다. 94년말 멕시코 위기를 악화시켰던 것이 국내 투자가들의 성급한 탈(脫)멕시코시장 움직임에 따른 대규모 자본유출이었던 것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투자의식의 전환은 소프트웨어 측면에서의 개혁과 맥을 같이해 일시에 그 결과를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몇 가지 제도적 노력이 바람직할 것이다.
첫째, 수요기반 확충 차원에서 기관투자가의 비중을 더 높일 필요가 있다. 코스닥 거래의 90% 이상이 일반투자자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고 증시 전체로 보더라도 기관투자가 비중이 선진국의 절반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대체로 일반투자자 비중이 높은 나라일수록 주가의 단기적인 등락이 심하다.
둘째, 공급측면에서 채권시장의 획기적 발전을 통해 안정적인 금융상품을 늘려야 한다. 특히 지표채권인 국채의 만기구조를 점차 장기화 표준화해서 포트폴리오 구성의 합리성 제고를 지원하고 투자자산의 위험을 적절히 분산할 수 있는 시장여건을 조성해야 한다.
셋째, 세제면에서 장기투자에 대한 인센티브 또는 단기차익에 대한 세금부과를 고려할 수 있다. 물론 세계적인 추세가 주식거래와 양도수익에 대해 세금부담을 낮추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과도한 단기거래에 따른 부작용을 감안할 때 신중히 검토할 가치는 충분하다.
끝으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책의 투명성을 유지함으로써 시장의 불확실성을 낮추는 노력이 수반돼야 하며 아울러 학계와 언론도 선진 투자문화의 정착을 위해 큰 몫을 담당해야 한다.
전광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