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로마의 관문 테르미니역에서 노천 원형극장인 콜로세움으로 연결되는 카부르거리. 로마에서도 가장 교통이 복잡한 곳 중의 하나인 이 곳은 출근길이면 ‘교통지옥’으로 변하다시피 한다.
이곳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오토바이와 스쿠터를 탄 시민들. 이들은 꼼짝 못하는 차량들 사이를 요리조리 누비며 달려가고 있었다.
이탈리아의 오토바이와 스쿠터 열풍은 다른 유럽국가에 비해 대단한 편이다.
이탈리아에 보급된 스쿠터는 약 420만대. 오토바이 100만대와 합쳐 약 500만대의 오토바이류가 운행되고 있다. 어림잡아 인구 10명당 1대 꼴로 오토바이류를 보유하고 있는 셈.
오토바이와 스쿠터가 인기를 끌게 된 것은 대도시의 좁은 도로에서 체증을 피할 수 있는 좋은 교통수단이기 때문. 또 14세가 넘으면 50㏄ 이하의 스쿠터를 면허 없이 탈 수 있고 16세부터는 125㏄ 이하의 중형 오토바이도 몰 수 있어 청소년 오토바이 인구가 나날이 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오토바이 증가에 따라 이와 관련한 교통사고가 빈발하는 것도 어쩔 수 없는 현실.
98년 통계에 따르면 전체 교통사고 사망자 5857명 가운데 스쿠터 사고로 숨진 사람은 676명으로 무려 11%에 달했다. 또 오토바이로 인한 사망자는 509명(8.7%)으로 이 둘을 합치면 전체 사망자의 20% 가량이 오토바이류 사고로 숨진 셈이다. 이같은 높은 사망률은 주로 헬멧 등 안전장구를 착용하지 않았기 때문.
이탈리아는 86년 오토바이류를 탈 때 헬멧 등 안전장구 착용을 의무화 해 당시엔 착용률이 50%를 넘었으나 이후 점차 줄어들어 98년엔 24%에 불과했다.
교통부 셀디니 안전국장은 “단속을 게을리 한 결과 안전장구 착용률이 떨어졌고 이에 따라 교통사고 사망자도 늘어났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젠 사정이 다르다. 카부르거리에서 만난 오토바이나 스쿠터 운전자들은 대부분 헬멧을 착용하고 있었다.
셀디니 국장은 “정확한 통계는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지금은 헬멧 착용률이 80%에 육박할 것”이라며 “오토바이 관련 사망자도 이전에 비해 절반 이하로 줄어든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같은 결과는 정부의 적극적인 단속 덕분. 이탈리아 정부는 지난해 교통사고 사망자를 2010년까지 4000명 이하로 줄인다는 계획을 세우고 우선 오토바이류 운전자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에 나섰다.
헬멧 등 안전장구를 착용하지 않았을 경우 10만리라(약 6만원)의 벌금을 물렸다. 지난해 적발 건수는 전국적으로 100만건이 넘었다.
또 헬멧 자체에 대한 단속도 강화해 안전 기준에 미달하는 헬멧을 팔다 적발된 가게에는 최고 400만리라(약 240만원)의 벌금을 내도록 했다. 이밖에 연간 6억리라(약 3억6000만원)의 예산을 들여 TV와 라디오 방송을 통해 오토바이 안전에 관한 지속적인 캠페인을 펴 왔다.
도로안전협회 페르난도 시실리아 국장은 “앞으로는 머리 외에도 턱까지 보호할 수 있는 헬멧을 착용토록 법으로 규제할 방침”이라며 “헬멧 단속이 어느정도 성과를 거두면 차량 운전자의 안전벨트 미착용도 적극 단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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