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년 동안 우리 사회를 뒤흔들었던 도청 및 감청 남용 방지를 위한 법제화가 이번 임시국회에서도 결국 무산될 전망이다.
국회 법사위는 지난달 31일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 중 △감청대상범죄에서 뇌물죄 제외 여부 △감청사실 사후통보제 △통신정보 제공시 법원허가 여부 △국가기관의 감청설비에 대한 인가 등 4가지 쟁점사항을 놓고 절충을 시도했으나 여야간 입장차를 좁히지 못했다.
이에 따라 2년 넘게 국회에 계류중인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은 이변이 없는 한 15대 국회에서 폐기처리될 것이 확실시된다. 결국 도청 감청에 대한 국민의 관심과 의식은 이미 2000년대 수준으로 크게 올라간 반면 이에 대한 법제화는 상당기간 법제정 당시인 ‘1993년 수준’을 유지할 수밖에 없게 됐다.
이같은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 여야의 비타협적인 태도와 함께 여야 지도부가 선거승리에만 관심을 둘 뿐 사회적 쟁점의 법제화 등 정치권 본연의 일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기 때문이다.
법사위는 지난해 말 통신비밀보호법을 심의하는 과정에서 감청대상범죄 감청시간 긴급감청폐지여부 등 골격에 대한 합의를 이뤄내 한때 법안이 처리될 수 있다는 전망을 낳기도 했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뒤늦게 야당의원에 대한 검찰의 표적수사를 막기 위해서는 특가법상 뇌물죄를 감청대상범죄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다소 무리한 주장을 내놓았고 여당 또한 한때 자신들이 당론으로까지 검토했던 감청사실 사후통보제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고집하면서 협상이 원점으로 돌아갔다.
이와 함께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도청 감청이 쟁점이 되자 “국민이 안심하고 통화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여러 차례 다짐했으나 국회에서 법안 처리시 통신비밀보호법이 여당의 ‘우선처리 법안리스트’에 오른 적이 한번도 없다.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도 지난해 국회 대표연설과 대여(對與)공세에서 항상 도청 감청 문제를 단골메뉴로 올렸지만 정작 법사위에서 통신비밀보호법 통과를 독려했다는 흔적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한편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이 늦어지면서 법안 공백마저 생기는 등 부작용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여야는 통신정보제공사항 중 사생활 침해의 우려가 있는 통화상대방의 전화번호와 전화통화시간확인 등은 전기통신사업법이 아닌 통신비밀보호법으로 규정해야 한다며 지난해 전기통신사업법 개정 때 이 조항을 삭제해 이 부분에 대한 법제화가 시급한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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