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이나 정부산하기관의 사장 등 임원 인사가 여당 정치권 인물들의 교통정리 차원에서 이루어진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언론재단의 이사장과 방송광고공사 사장에 민주당의 서울지역 원외 지구당위원장들이 내정됐고 토지공사 사장에는 자민련의 중견 정치인이 추천됐다. 전임 이사장이나 사장이 4·13총선에 나서기 위해 사임한 곳을 이번에는 총선에 나서지 않을 정치인들로 채우는 묘한 ‘임무 교대’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공기업이 무슨 정치인들의 총선 대기소나 낙천 무마용 휴게소냐는 소리가 나오는 지경이다.
현 정권은 취임초부터 끊임없이 공공부문의 개혁을 강조해왔다. 그런 차원에서 공기업의 구조조정도 했으며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전문인력을 배치한다는 원칙도 여러 차례 표명했었다. 구조조정 탓에 많은 사람들이 직장을 잃었지만 정부가 내세운 원칙이 옳았기에 대부분 불만을 삭여온 것도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지금 선거철을 맞아 정당 공천에서 배제된 정치인들을 낙하산식으로 줄줄이 내려보내고 있으니 2년여 외쳐온 개혁을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며 직장에서 쫓겨난 이들의 불만을 일부러 촉발하는 꼴이다.
이번에 공기업 임원으로 내정된 인물들은 여당내 신진 영입인사들과의 공천경쟁에서 밀려 지구당위원장을 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지역구 표밭갈이만을 주업으로 삼았을 이들이 본인의 뜻과 상관없이 정치권에서 밀려 공기업에 들어왔으니 얼마나 능률적으로 일을 할지 의문이다. 당사자 개개인의 능력을 따지자는 것이 아니다. 인사방식이 이런 식의 갈라주기라면 효율성이나 창의성 같은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 공기업 내부의 사기도 떨어지고 구성원들이 거세게 반발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문제는 이 같은 인사가 앞으로도 더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정권 출범후 각종 공기업이나 정부산하기관 등에 친여 정치인들이 대거 들어갔고 이들이 선거를 통해 다시 정치권에 진입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기 때문이다. 여당의 후보 공천이 끝날 무렵이면 공천받은 사람과 낙천자들을 교통정리하는 작업이 벌어질 것이고 자연히 또 한차례 무더기 낙하산 인사가 있게 될 것이란 얘기다.
선거를 전후한 여권의 인력 재배치용 나눠먹기 인사는 항상 말썽을 빚었다. 한번 정권을 잡으면 수천개의 자리를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다는 그릇된 인식이 정치권에 뿌리깊이 박힌 탓에 정부 여당의 입김이 닿는 기업 기관들은 발전이나 개혁과는 동떨어진 길을 걸어왔다. 개혁의 성과를 자랑하고 또 앞으로도 개혁을 계속하겠다는 여권이 정치성 짙은 반개혁적 인사를 밥먹듯이 한다면 선거에도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