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춘의 역사는 곧 인류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매춘부는 가장 오래된 직업일는지 모른다. 아무리 엄격한 통제사회도 매춘단속에 완전히 성공한 예는 찾아보기 어렵다. 사회적 환경에 따른 부침(浮沈)은 끊임없이 있어 왔지만…. 유럽의 경우 중세와 르네상스기는 매춘이 아주 성행했던 시기다. 매춘이 하나의 제도로 허용된 탓이다. 이탈리아 베네치아는 1526년에 인구 5만5000여명 중 10% 가까운 4900명이 매춘부였다는 기록이 있다. 당시 귀족들은 건물을 매춘사업자에게 임대해주고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다고 한다.
▷이탈리아 피렌체 등에서는 경찰이 매춘부들을 ‘보호’하기 위해 홍등가를 순찰했다. 독일에서는 결혼식때 매춘부들이 흥을 돋우는 역할을 하기도 했고 프랑스 리옹에서는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시민축제에 떳떳이 참여했다. 매춘이 ‘가정을 지켜주는 요새’로 통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즉 남성들의 성적 에너지 분출구를 마련해주는 한편 부인과 딸들을 성범죄로부터 보호해 준다고 믿었다는 얘기다. 매춘을 합리화하기 위해 그럴듯한 이유를 끌어댄 것이다.
▷16세기 중반이후 17세기에 이르면서 매춘은 된서리를 맞는다. 전 유럽이 칙령을 통해 매춘을 범죄로 낙인찍고 대대적 소탕을 시작한다. 사가(史家)들은 당국의 매춘에 대한 갑작스러운 태도변화를 매독의 등장에서 찾는다. 그러나 그보다는 종교적 이유를 꼽는 이도 있다. 종교개혁에 나선 루터가 기독교도들의 매춘용납을 개탄하면서 ‘남성도 순결을 지켜야 한다’고 촉구한 것을 계기로 본 것이다. 그후 매춘을 중죄로 다스렸을 뿐만 아니라 매춘부들이 우아한 옷을 입고 다니면 ‘사치단속법’으로 혼꾸멍이 났다.
▷서울 ‘미아리 텍사스’의 운명이 한 여성 경찰서장의 부임 이후 갈림길에 섰다. 관할 구청은 단김에 뿔을 뽑으려고 단전 단수를 시도했으나 한전과 경찰측이 실효성 문제를 제기하며 반대하자 불발이 돼버렸다. 당국의 자중지란에 힘을 얻은 듯 윤락업주들은 “정 그러면 주택가로 들어가겠다”고 으름장이라니 점입가경이다. 매춘은 ‘필요악’인가, ‘사탄’일 뿐인가. 해묵은 논쟁의 재연이 답답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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