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두라만 와히드 인도네시아 대통령이 군부 실세인 위란토 정치안보조정장관의 경질을 발표한 데 대해 위란토장관이 사임을 거부, 와히드 정권과 군부가 갈등을 빚고 있다.
와히드는 끊임없는 군부 쿠데타 우려에도 불구하고 2주일간의 해외순방에 나섰다. 스위스 다보스 세계경제포럼에 참석한 그는 지난달 31일 “귀국하면 위란토장관에게 사임을 공식 요청할 것”이라고 밝혔다.
와히드는 “동티모르 폭력사태에 군부가 직접 연루됐다는 조사위원회 보고서에 따라 이미 후임자도 결정했다”고 말했다. 그는 위란토가 일단 공직에서 물러난 뒤 국내 법정에서 심리를 받을 것이라고 밝혀 위란토의 형사처벌 가능성까지 시사했다.
그러나 위란토는 이날 기자들에게 “동티모르 진상조사가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사임여부를 밝히는 것은 시기상조”라며 거부의사를 명확히 했다.
인도네시아 군부는 1일까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쿠데타설이 나돌고는 있으나 인도네시아 경제의 목줄을 쥐고 있는 미국 때문에 군부가 무모하게 쿠데타를 일으키지는 못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실제로 미국은 지난달 중순 인도네시아 군부에 대해 와히드의 권위에 도전하지 말라고 경고했었다. 미국은 또 개혁에 진전이 있으면 국제통화기금(IMF) 등을 통해 100억달러 이상을 지원하겠다는 약속도 했다.
무엇보다 위란토가 현재 병력을 움직일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다는 점도 이같은 시각을 뒷받침한다.
그러나 위란토의 사임거부 소식과 군부 쿠데타에 대한 우려를 반영하듯 1일 인도네시아 증시는 3.0% 포인트 하락했다.
▼위란토의 역정▼
인도네시아의 위란토 정치안보 조정장관(52)은 한때 최고 실세로 꼽히며 막강한 힘을 휘둘렀던 군 출신 인물. 군부의 입김이 셌던 수하르토 대통령 시절 군 최고사령관을 지냈으며 하비비 정권에서도 군 최고사령관과 국방장관을 겸임하는 등 권력을 유지했다.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했고 1989년 수하르토의 부관으로 임명된 것이 인연이 돼 고속 승진을 거듭하며 군 요직을 섭렵했다. 그는 수하르토 퇴임을 전후해 학생 시위로 사회가 혼란스러웠을 당시 권력을 잡을 기회가 있었으나 결코 권력의 전면에 나서지 않았다. 그는 얼마전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내가 나쁜 생각을 했다면 몇 번이나 기회를 잡을 수도 있었다”며 군인으로서 자리를 지켰다는 데 대한 자부심을 내비쳤다.
수하르토 퇴진 이후 군부에 대한 비난이 높아지자 의회격인 국민협의회(MPR)의 군부 의석을 줄이는 등 개혁에 앞장서기도 했다. 특히 지난해 10월 대선에서 대통령 후보로 출마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야당 지도자였던 압두라만 와히드를 지지해 54년 만에 첫 민주적 정권교체를 이뤄내는데 일조하기도 했다.
위란토는 이처럼 자신이 인도네시아의 민주화를 위해 일조했다고 자부하기 때문에 와히드 대통령의 사임요구를 거부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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