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3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과 대중가요계에 묘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가요를 선거용으로 사용하려는 정치권에 대해 대중가요계가 저작권 등을 내세우며 제동을 걸고 나섰기 때문이다.
제목 하나만으로도 정치권이 탐을 내는 이정현의 ‘바꿔’는 정치권과 대중가요계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곡. 후보자 등 50여곳에서 판권을 가진 음반사 예당음향 측에 노래를 사용할 수 있게 해달라고 신청했으나, 예당음향은 원곡 사용을 금지했다.
이번에는 정치권이 이 노래의 가사를 바꾸어 사용하려고 하자 저작권을 갖고 있는 작사 작곡자 최준영씨가 총선시민연대 소속의 대중음악작가연대에 관리를 위임, 시민단체의 공천반대 인사로 거명된 후보자들에게는 개사를 금지하게 했다. 또 이 노래를 개사해 총선 로고송으로 사용하려던 한나라당은 “노래 가사를 바꾸어 사용하는 것조차 금지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항의하고 있다. 그러나 저작권법 상 노래를 개사해 공식 사용하려면 저작권자의 허락을 반드시 얻어야 한다.
엄정화의 ‘페스티벌’은 그 반대의 경우. 총선연대가 정치권 물갈이를 주제로 가사를 바꿔 낙선 운동의 로고송으로 사용할 계획이어서 후보자들의 신경을 거슬리게 하고 있다. ‘이제는 바꿔봐요 정치권/행복한 생활이야 해피데이/…’.
총선연대 측은 앞으로도 대중음악작가연대와 협의해 몇몇 히트곡들의 가사를 바꾸어 캠페인송으로 사용할 예정이다. 총선연대의 김타균 홍보국장은 “친숙한 노래로 유권자들을 선거혁명에 동참케 하려는 의도”라고 말했다.
뿐만 아니다.
인기 가수들의 경우 자신의 히트곡이 선거전에서 사전 양해없이 개사되어 불릴 가능성이 높아 전전긍긍하고 있다. 가수 박모씨는 “가뜩이나 불신받고 있는 정치권에서 내 노래가 무단으로 사용돼 이미지를 훼손시킬까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실제 98년 지방선거 때 후보자들이 무단으로 히트곡을 로고송으로 사용하자 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서는 경고 공문을 보내기도 했다.
국내 선거판에서 가요의 ‘노가바(노래 가사 바꿔 부르기)’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97년말 대선 때 김대중 후보측은 그룹 ‘DJ DOC’의 ‘DOC와 춤을’을 개사해 홍보 효과를 톡톡히 봤다. 미국은 개사보다 원곡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91년 선거 때 클린턴의 민주당 진영이 플리트우드 맥의 ‘내일의 생각을 멈추지 말아요(Don’t Stop Thinking Tomorrow)’로 유권자들의 정권 교체 심리를 자극한 바 있다.
가요평론가 강헌씨는 이에대해 “정치권이 아무런 철학 없이 대중 문화의 순간 폭발력에만 편승하려는 의도를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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