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민주 공화당의 대통령후보 지명을 위한 뉴햄프셔주 예비선거의 매력은 단기필마의 예비후보도 승리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공화당의 존 매케인 상원의원이 1일 이를 입증했다. 매케인은 기록적인 선거자금과 거의 모든 공화당출신 주지사와 의원들의 일방적 지지를 확보한 조지 W 부시 텍사스 주지사에게 압승했다. 이로써 공화당 선거판도가 1강1중3약에서 양자대결구도로 재편되면서 부시의 대세론에 강력한 제동이 걸렸다.
매케인의 승리는 “무슨 일이 있어도 진실만을 말하겠다”는 구호가 가장 큰 요인인 것으로 분석된다. 그는 출구조사의 신뢰성 항목에서 부시를 50대 17로 따돌렸다.
매케인은 개표가 진행된지 얼마 안돼 그가 일으킨 파란에 언론이 흥분해 있을 때 조용히 다음번 예비선거가 치러지는 사우스 캐롤라이나주로 이동, 2일 새벽부터 선거운동을 시작했다. 수중에 많아야 부시의 하루치 선거비용인 20만달러밖에 남아있지 않은 그로서는 유권자 속으로 직접 파고드는 ‘소매 선거운동(retailing campaign)’ 외에는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그의 선거방식은 로비스트와 특수한 이해집단이 워싱턴에 있는 의원들과 형성하고 있는 ‘철의 삼각지대’를 깰 적임자는 (돈 없는) 자신밖에 없다는 메시지와 조화를 이루고 있다. 그는 19일 사우스 캐롤라이나주에서 승리해 승리가 예상되는 22일 고향 애리조나주에 이어 다음달 7일 뉴욕주와 캘리포니아주를 포함, 11개주 예비선거에까지 눈덩이처럼 세를 불려나갈 계획. 그러나 앞으로 선거를 치를 주들은 뉴햄프셔주처럼 작은 주들이 아니어서 소매 선거운동에 한계가 있다.
반면 부시는 여론조사에서 압도적 우위를 보이고 있는 사우스 캐롤라이나주에 저지선을 세워 매케인의 상승세를 차단할 계획이다. 부시 진영은 뉴햄프셔주 선거운동에 부친인 조지 부시 전대통령을 끌어들인 게 오히려 명문가에 대한 유권자의 거부감을 초래한 점을 의식, 앞으로는 겸손한 후보의 이미지를 강조할 계획.
민주당에서는 앨 고어 부통령이 빌 브래들리 전 상원의원을 좌절시키기에는 부족한 상징적 승리를 거뒀다. 브래들리는 수중에 있는 830만달러에다 연방선거위원회로부터 1140만 달러를 지원받을 예정이어서 끝까지 갈 ‘실탄’은 충분하다.
그는 공화당의 매케인이 공통의 지지기반인 무당파 유권자들의 표를 많이 가져가는 바람에 손해를 봤다. 아이오와주보다 득표율은 높아졌지만 이길 가능성이 있는 지역을 놓쳤고 또 다음 선거는 다음달 7일에나 실시되기 때문에 일정도 별로 유리할 게 없다. 이 때문에 자신감을 얻은 고어 부통령은 상처없이 예선을 통과하기 위해 1일 “(인신공격성) 부정적 선거운동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뒤 브래들리의 답변을 기다리겠다고 말했다.
양측은 원래 고어가 제안하고 1일 브래들리가 수정제안한 토론일정에 따라 6일부터 매주 한번씩 열리는 1 대 1 TV토론을 통해 선거전을 이어나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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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풍주역 매케인▼
존 매케인 연방 상원의원(64·애리조나주)은 ‘전쟁영웅’ ‘젠틀맨’ 등의 별명을 갖고 있다.
전쟁영웅이라는 그의 이미지는 베트남전 콤플렉스를 가진 미국인들에게 큰 위안이 된다. 67년 10월 베트남전 당시 매케인은 아버지가 태평양함대 사령관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해군 조종사로 참전했다가 5년반 동안 포로생활을 했다. 고문과 부상으로 망가진 몸을 이끌고 당당히 귀국하던 청년 매케인의 모습은 지금도 많은 미국인들에게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젠틀맨의 이미지는 평소 그의 행동에 담겨 있다. 매케인은 TV토론에서 상대 후보들을 칭찬하는가 하면 언론의 집중 취재 속에서도 시시콜콜한 질문에까지 친절히 답해 호평을 받고 있다.
매케인은 특히 ‘깨끗한 정치인’의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민주당의 빌 브래들리 전상원의원과 함께 대통령 후보로 선출될 경우 정당 후원금(소프트머니)의 전용을 금지하겠다고 선언한 것이 대표적인 경우. 지난해 8월에는 예비후보들이 많은 돈을 들여 아이오와주 모의투표에 참여하는 것을 비난하며 불참을 선언했다.
36년 파나마 미군기지에서 태어났으며 미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했다. 82년 연방 하원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해 86년 상원에 진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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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참가 사상최다 기록▼
1일 뉴햄프셔주 예비선거에 참여한 유권자가 이 주의 예비선거 사상 최다를 기록했다. 갈수록 투표율이 낮아지는 선진국의 일반적 경향을 뒤집은 매우 이례적인 결과다.
뉴햄프셔주 주무(州務)장관인 빌 가드너는 1일 “투표참가인원이 35만1000명을 웃돌아 과거 34만8000명의 투표기록을 능가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이 주의 총 유권자수는 73만8000명이다.
이처럼 많은 유권자들이 선거에 참여한 것은 맘에 드는 예비후보들이 출마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ABC 등 5개 방송사의 합동 출구조사에 따르면 공화당의 경우 유권자의 90%가 자신이 찍은 후보에 만족한다고 밝혔다. 96년 이곳 예비선거에서 투표에 참여한 40%가 찍을 만한 후보가 없었다고 답변한 것과는 분명한 대비가 된다. 2명이 출마한 민주당에서는 조사에 응한 투표자 80%가 자신이 찍은 후보에 대해 만족감을 표시했다. 특히 정치에 대한 냉소적 태도가 강해 기권하기 쉬운 무당파들이 대거 투표에 참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뉴욕타임스지는 1일 뉴햄프셔주 주민들은 그동안 ‘덜 나쁜’ 사람을 골라야 했던 과거와 달리 ‘보다 나은’ 예비후보를 고르기 위해 행복한 고민을 해야 했다고 보도했다. 한 유권자는 “지난 30년동안 이처럼 좋은 후보군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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