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까치야 뭣하러 왔냐/때때옷도 없고 색동저고리도 없는 설날 아침에/ 이제 이 마을에는 너를 반겨줄 고사리손이 없단다/강아지도 없단다/무슨 좋은 소식일랑 가지고 왔거들랑/돈이며 명예며 그런 것들을 찾아 마을을 떠난/세상 사람들에게 죄다 주고/늙으신 우리 어머니 아버지에게는/가난에 주눅이 들지 않도록 사랑의 노래나 하나 남겨놓고 가렴
▷고(故) 김남주 시인의 ‘설날 아침에’란 시의 한 구절이다. 그는 1979년 남한 최초의 ‘자생적 공산주의’로 알려져 충격을 주었던 이른바 ‘남민전(남조선 민족해방전선)사건’으로 구속돼 9년3개월의 옥고를 치르고 88년말 세상속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돌아온 세상속의 삶은 너무 짧았다. 오랜 옥고에서 얻은 병으로 그는 불과 5년여를 더 살고 마흔여덟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13일은 그의 6주기다. 박정희 유신독재에 맞서 싸웠던 그의 시는 ‘무기’였다. 그는 스스로 시인이라기보다는 ‘전사(戰士)’로 불리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다. 그는 여린 심성의 시인이었을 뿐이다.
▷‘설’이란 새해라는 뜻이며 또 새해의 첫날을 일컫는다. ‘전사’에서 ‘시인’으로 돌아온 김남주는 설날 아침을 조금은 어둡고 슬프게 노래했다. 시인의 눈에는 아마 젊은이들은 떠나고 늙은이들만 남은 고향마을이 그렇게 비쳤었나 보다. 하지만 까치에게나마 ‘사랑 노래’를 남겨놓고 가기를 바라는 시인의 마음은 따뜻하다. 올해 설에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고향을 찾는 이들의 마음 마음마다 ‘사랑 노래’가 가득했으면 좋겠다.
▷73명의 해직교사들이 3월부터 다시 교단에 선단다. 그들 중에는 유신체제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쫓겨났다가 20여년만에 머릿결이 분필가루처럼 희끗해져 돌아오는 선생님들도 있다. “가족에게 미안할 뿐 후회는 없다”지만 그들이 지내온 신산한 세월에 ‘사랑 노래’인들 변변했겠는가. 김남주 시인의 부인으로 해직교사였던 박광숙씨도 올봄부터는 다시 국어선생님으로 교단에 선다고 한다. 그들 모두에게 시인의 ‘사랑 노래’가 함께하는 설 아침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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