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단체 회장직은 피곤해’.
기업인들 사이에 명예직으로 꼽혀 오던 경제단체 회장직이 오히려 ‘기피직’으로 바뀌고 있다. 회장에 오르면 명예는 얻지만 그 이상으로 손에 구정물 묻힐 일이 많고 자기 회사 경영은 소홀히 할 수밖에 없는 데서 오는 스트레스 부담이 크기 때문.
임기 만료로 차기 회장 선임을 앞두고 있는 일부 단체들은 이 때문에 진통을 계속하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김각중(金珏中)회장대행의 임기만료(15일)를 일주일 앞둔 7일까지도 회장 인선이 별다른 진척을 거두지 못한 상태. 여기에는 안팎의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첫째 전경련회장직은 재계의 이해를 대변해 ‘총대’를 메야 하는데다 재계 입장의 내부조율이라는 버거운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 여기에 ‘오너 중심의 조직’에 변혁을 요구하는 정부의 외압까지 겹쳐 누구도 선뜻 나서려 하지 않고 있다.
전경련은 총회 1주일 전인 10일 회장단 회의에서도 차기회장 선임 문제를 논의하지 않기로 하는 등 새 회장에 누가 앉을 것인지는 아직도 ‘안개 속’이다.
정몽구(鄭夢九)현대회장 카드가 불발된 이후 비오너 출신인 유상부(劉常夫)포철 회장, 손길승(孫吉丞)SK회장 고두모(高斗模)대상회장 등 전문 경영인 출신 인사들이 본인 의사와 무관하게 거론되고 있으나 당사자들은 모두 손을 내젓고 있다. 포철 유회장은 “포철 경영만으로도 할 일이 많다”며 고사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이번달말로 임기가 만료되는 한국경영자총협회는 김창성(金昌星)회장의 유임이 거의 확정적이다. 그러나 김회장의 연임은 본인의 자발적 의사라기보다는 ‘자의반 타의반’에 의한 것이라는 게 주변 얘기.
97년 이동찬(李東燦)전회장이 중도사퇴하면서 반강제로 추대된 김회장은 이번에도 회장 자원자가 아무도 없는 상황에서 회장단이 “대안이 없다”며 강권해 연임 쪽으로 마음을 굳힌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총 관계자는 “경총 회장은 노사관련 단체라는 특성상 노동자들에게는 욕먹는 자리라 회장 선임 때마다 진통을 겪는다”고 말했다.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4월 임기만료를 앞두고 ‘장수회장’인 김상하(金相廈)회장이 연임을 고사함으로써 후임자가 관심을 끌고 있다. 김회장은 그동안 “상의 일로 회사(삼양그룹) 일에 제대로 신경을 못 써 왔다”고 간혹 털어놓곤 했다.
김회장의 말처럼 경제단체장 기피증은 요즘처럼 급변하는 경영환경에 ‘외도’를 하다가는 자칫 자신의 기업이 언제 어떻게 ‘삐끗’할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기도 하다. 작년 김우중(金宇中)전 전경련회장과 박상희(朴相熙)중소기업협동중앙회회장(미주그룹 워크아웃 지정)의 경우가 회원들에게 충격을 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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