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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홍찬식/문화를 흔드는 손

입력 | 2000-02-06 19:49:00


가수 이정현의 노래 ‘바꿔’가 시민단체의 낙선운동 등 정치적 이슈들과 맞물려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 음반이 첫선을 보인 것은 지난해 가을이다. 노래 가사는 더 이전에 쓰여졌을 테니까 분명 현재의 정치 상황을 미리 내다보고 만든 노래는 아니다. 하지만 ‘세상 모든 것을 바꾸라’는 가사내용은 4월 총선 등 정치 현안, 나아가 벤처의 홍수 등 사회 흐름까지 기막히게 반영하고 있으니 어쩔 것인가. 그 놀라운 투시력에 감탄할 수밖에.

▷요즘 대중문화 기획자들이 보여주는 정교하고 치밀한 마케팅 전략을 지켜보면 이런 식의 ‘미래예측’이 ‘장님 문고리 잡기’식의 우연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대중음악의 경우 음반회사 등 가수들과 계약관계에 있는 브레인들은 새 앨범을 발표하기 전에 매우 구체적으로 시나리오를 짠다. 유행과 소비자 취향에 맞는 노래 가사나 리듬을 찾기 위해 고심하는 것은 물론이고 어느 가수를 내세울지, 또 춤과 의상은 어떻게 할지를 미리 결정한 뒤 제작에 나서는 것이다.

▷과거 대중문화 스타들은 ‘어느날 아침 깨어나보니 스타가 되어 있었다’는 말이 딱 들어맞을 만큼 우연히 부각된 경우가 많았다. 이들이 소비자의 선택으로 자연스럽게 탄생한 스타라면 요즘 스타들은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스타’라는 점이 다르다. 그러나 10대들은 이런 대중문화의 ‘보이지 않는 손’을 의식하지 못하고 겉으로 나타난 스타의 움직임만 쫓는다. 광적으로 환호하는 오빠부대가 대표적인 예다.

▷이들 기획자들의 궁극적 목표는 당연히 이윤 추구다. 이들이 쏟아내는 문화상품에는 옥석이 같이 섞여 있을 수밖에 없다. 주부가 시장에서 좋은 물건을 고르는 눈이 요구되듯이 문화소비자들에게 옥석을 가리는 눈이 필요한 이유다. 아쉽게도 대중문화의 가장 큰 소비자인 10대들은 이런 안목을 갖출 여유가 별로 없다. 자칫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조종당할 수도 있다. 이들에게 ‘문화를 보는 눈’이 길러진다면 실력있는 문화기획자들은 걸맞은 평가를 받으며 성장하고 저질문화를 내놓는 기획자들은 도태되고 말 것이다. 이는 문화발전과 직결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chansi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