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바둑계 판도에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과연 이창호 조훈현 유창혁 서봉수 등 이른바 ‘4인방’의 벽이 무너질까?
4인방의 ‘철옹성’에 도전하는 선두주자는 한국기원 소속의 중국 여류기사 루이나이웨이 9단. 그는 43기 국수전 도전자 결정전에서 이창호 9단을 꺾은 뒤 조훈현 9단과의 도전 3번기에서는 1승1패를 기록하고 있다.
바둑계에서는 루이 9단이 조 9단을 물리치고 국수 타이틀을 차지하는 ‘반상의 성혁명’이 성공할 경우 4인방 체제가 급격하게 무너질 가능성이 크다는 성급한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원성진 2단(15)과 유재형 3단(23)도 세대 교체의 물결에 합류했다.
원 2단은 지난달 26일 왕위전 본선 개막전에서 백을 쥐고 168수만에 ‘세계 최고의 공격수’라는 유창혁 9단을 불계승으로 침몰시켰다.
한편 유 3단도 그 이틀 뒤인 지난달 28일 018배 패왕전에서 서봉수 9단을 맞아 백으로 140수만에 불계승을 거뒀다.
바둑계는 80년 이후 10년주기로 두드러지는 변화가 있었다. 조훈현 9단이 9관왕을 차지하며 1차 ‘천하통일’에 성공한 게 80년이었다. 조 9단은 이어 86년까지 3차례의 천하통일과 89년 제1회 잉창치배 우승으로 명실상부한 세계바둑의 황제로 군림했다.
달도 차면 기우는가? 영원할 것만 같았던 ‘조훈현 시대’의 붕괴는 공교롭게도 내부에서 시작됐다. 그의 제자인 이창호 9단이 90년 제29기 최고위전에서 스승인 조 9단을 물리치면서 주요 기전에서 첫 타이틀을 획득했다.
이 9단은 이어 94년 최다관왕(14관왕)과 세계 주요 대회를 휩쓸며 90년대를 이창호 시대로 만들었다.
단순하게 표현하자면 지난 20여년은 조-이의 ‘세습 독주’와 이에 맞선 유창혁 서봉수 9단의 ‘끝없는 반란’의 시대였다고 할 수 있다.
‘4인방 시대’의 종언에 대한 바둑계의 전망은 엇갈리고 있다. 4인방의 잇따른 패배를 새 시대의 신호탄으로 여기는 분석도 있다.
특히 조훈현 서봉수 9단의 위세가 예전만 못한 반면 이성재 안조영 5단, 목진석 4단 등 신흥강호군이 급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승의 기록으로 보면 제3기 SK가스배 신예프로 10걸전에서 우승한 목4단은 1999년 61승23패로 다승 부문 1위였으며 안 5단이 54승1무15패로 다승 2위였다.
이창호 9단이 51승11패로 다승 3위였던 점을 감안하면 이들 신예의 강세를 짐작할 수 있다.
승률로 따질 경우 안 5단은 77.86%로 3위였다. 승률 부문에서는 루이 9단이 84.62%로 1위였고 이창호 9단이 82.26%로 2위였다.
하지만 아직도 신중론에 무게가 실려 있다. 최명훈 윤성현 김승준 6단 등이 줄기차게 세대 교체를 외쳤지만 4인방의 두터운 벽을 뚫는 데는 실패했기 때문이다.
양재호 9단이 88년 동양증권배에서 우승한 뒤 4인방을 뺀 나머지 기사들은 20여년간 속기전을 뺀 주요 기전에서 타이틀을 획득하지 못했다.
이창호를 중심으로 21세기 바둑계 판도가 어떤 식으로 짜여질지 관심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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