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과 상하원 의원, 주지사 등 각급 선거를 앞둔 미국에서 요즘 화제를 모으는 가문은 단연 부시 집안과 클린턴 집안이다.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의 장남 조지 W 부시 텍사스 주지사가 아버지의 대를 이어 대통령 선거에 나섰고 빌 클린턴 대통령의 부인 힐러리 여사가 뉴욕주 연방 상원의원 선거에 출마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제2대 대통령 존 애덤스의 아들 존 퀸시 애덤스가 제6대 대통령으로 선출돼 부자가 대통령을 지낸 전례가 있다. 그러나 부시 전대통령이 1992년 대선에서 클린턴 현 대통령에게 패배한 지 8년 만에 그의 아들이 대선 레이스에 뛰어든 것은 이례적인 일임에 틀림없다. 게다가 힐러리 여사는 미국 역사상 공직선거에 출마한 최초의 대통령 부인이다.
이 때문에 미국 언론은 부시 주지사와 힐러리 여사의 언동, 그리고 부시 전대통령과 클린턴 대통령의 선거지원을 연일 비중 있게 보도하고 있다. 미국 언론이나 여론은 이들 가문의 ‘바통 터치’식 출마를 정치세습 시도로 문제삼지는 않는다. 부시 주지사와 힐러리 여사가 기본적으로 본인들의 뛰어난 능력 때문에 출마하는 것이지 아버지나 남편의 힘을 빌려 공직선거에 나서는 것은 아니라고 보기 때문이다. 미국인들이 유력 정치인을 여러 명 배출한 케네디 집안에 대해 갖고 있는 인식도 이와 비슷하다.
미국에서는 적어도 정치권력자의 가족이 권력을 배경으로 호가호위(狐假虎威)하거나 유명 정치가문이 초법적 방법으로 권력을 대물림하는 일은 상상하기 어렵다. 한국에서처럼 정치권력자의 자식이나 친인척이 권력형 비리에 연루돼 나라를 시끄럽게 하는 일은 더더욱 없다. 부시 주지사와 힐러리 여사의 출마에 대해 미국 언론이 정치세습을 문제삼지 않고 관대하게 보도하는 또 다른 이유는 거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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