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십년간 비탄과 한숨으로 얼룩진 장벽이 을씨년스럽게 동과 서를 갈랐던 독일 베를린의 포츠담 광장이 올해는 축제 분위기로 들썩인다.
칸, 베니스와 함께 세계 3대 영화제 중의 하나인 베를린 국제영화제가 9일 독일 금융 문화의 중심지로 탈바꿈한 포츠담 광장에서 축제의 막을 올린 것. 포츠담 광장 마를리네 디트리히 구역의 오디토리엄에서 2000여명의 관계자가 참석한 가운데 열린 이날 개막식에서는 심사위원장인 중국 여배우 공리의 개막선언 직후 개막작인 독일 빔 벤더스 감독의 ‘밀리언 달러 호텔’ 상영이 잇달았다.
올해 50회를 맞는 베를린 국제영화제는 지난해 베를린이 독일의 새로운 수도가 되고, 통일 전 장벽이 있던 포츠담 광장이 시가지의 중심으로 재건된 뒤 열리는 최초의 대규모 국제 행사.
올해 경쟁부문에 오른 16개국의 영화 21편 중에는 톱 스타들이 출연한 할리우드 영화가 유난히 많은 것이 특징. 탐 크루즈 주연의 ‘매그놀리아’, 덴젤 워싱턴의 ‘허리케인 카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비치’ 등 21편 중 6편이 할리우드 영화. 이밖에 중국 장이모우 감독의 ‘고향길’, 프랑스 클로드 밀러 감독의 ‘마술사의 방’, 독일 폴커 슐렌도르프 감독의 ‘리타의 전설’ 등도 경쟁부문에 올랐다.
폐막일인 20일까지 경쟁 비경쟁 부문, 영화제와 동시에 열리는 필름 마켓 등을 포함해 모두 600편 가량의 영화가 상영된다. 올해 한국영화의 진출은 저조한 편이어서 스크린쿼터 사수운동을 담은 다큐멘터리 ‘노래로 태양을 쏘다’와 단편영화 ‘고추말리기’ 등 2편이 비경쟁 부문인 포럼에 포함됐다.
51년 동구권 국가에 대한 서방세계의 ‘전시장’을 만들려는 미국 주도로 창립된 베를린 영화제는 동서 양진영을 잇는 고유한 역할을 수행해왔지만, 90년 독일 통일이후 새로운 정체성을 찾지 못해 혼란을 겪어왔다. 올해 50주년을 맞아 포츠담 광장에서 새출발을 선언한 베를린 영화제가 과연 극적인 변신에 성공할 수 있을 것인가. 베를린 영화제에 쏠린 세계 영화계의 관심을 반영하듯, 세계 60여개국에서 온 3000여명의 기자와 35만여명의 영화 관계자들로 포츠담 광장은 발디딜 틈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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