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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극장가/쓰리 킹즈]걸프戰 '건달 병사들'

입력 | 2000-02-10 19:53:00


91년 걸프전은 TV를 통해 게임처럼 생중계된 최초의 전쟁이었다. 당시 미국 CNN은 사담 후세인 대통령의 이라크군을 응징하는 미군의 영웅적인 활약상을 시시콜콜하게 안방에 소개했다.

과연 이것이 진실이었을까? 걸프전을 소재로 다룬 영화 ‘쓰리 킹즈(Three Kings)’는 이같은 도발적인 문제 제기와 독창적인 아이디어, 실험적인 영상으로 가득하다.

전쟁을 다루면서도 정작 이야기는 전쟁(걸프전)이 끝난 뒤 시작된다. 전쟁에 참가했지만 공중을 오가는 최첨단 무기 덕에 총 한 번 제대로 쏘지 못하고 빈둥거리는 미군의 병영. 어느 날 이라크 포로의 항문에서 ‘냄새나는’ 한 장의 지도가 발견된다. 특무상사 게이츠(조지 클루니 분)와 하사 발로우(마크 월버그), 중사 엘진(아이스 큐브) 일행은 이 지도가 후세인의 황금을 숨겨둔 지하 벙커의 약도로 단정하고 ‘보물찾기’에 나선다.

전쟁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면서도 영화는 가볍고, 빠르고, 흥미롭다. 시종일관 계속되는 액션과 블랙 유머는 화면에서 눈을 떼기 어렵게 만든다.

걸프전에 대한 데이비드 O 러셀 감독(43)의 해석은 파격적이다. 영화 속에서는 치열한 전투도, 뉴스에 소개됐던 영웅적인 군인상도 없다. 심지어 주인공 게이츠도 전쟁은 안중에 없고 혼란을 틈타 한탕하려는 속물로 그려지고 있다.

선과 악, 적군과 아군 등 전쟁 하면 연상되는 공식들도 사라진다. 게이츠 일행이 무기를 실었다고 판단해 폭발시킨 차량에서는 굶주린 이라크 주민들에게 생명이나 다름없는 우유가 콸콸 쏟아진다. 그런가 하면 포로로 잡힌 트로이는 휴대폰을 이용해 고향에 있는 아내에게 연락해 구조요청을 한다.

영화는 시간이 흐를수록 전쟁의 본질에 대한 비판의 날카로운 이빨을 세운다. 미국 부시대통령의 지원을 믿고 저항한 반군들은 이라크군에게 무참하게 희생당한다. 이라크군은 게이츠 일행의 금괴 도둑질을 도우면서 반군 진압에 개입하지 말 것을 요구하는 등 기막힌 상황이 계속 이어진다. 연출과 시나리오를 맡은 러셀 감독은 실제 이 작품을 위해 이라크에서 18개월간 머물면서 걸프전을 연구하기도 했다.

‘쓰리…’가 신예 러셀 감독을 일약 주목받는 감독의 반열에 오르게 한 것은 감각적인 연출력 때문이다. 도입부에는 ‘블리치 바이패스’라는 필름 현상법으로 종전 직후 찌는 듯한 사막의 열기를 실감나게 묘사했다. 총알이 사람 몸을 뚫는 것을 해부학적으로 묘사한 장면도 진짜 시체에 총을 쏴 촬영했다는 오해를 받을 정도로 리얼하다. 18세 이상 관람가. 12일 개봉.

gs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