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간부는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해서 누가 사장실에 자주 드나 드느냐며 꼬치꼬치 물어요.”
전직 여비서 곽모씨. 그는 비서 전문직으로 사내 고위층을 보좌하면서 한 번이라도 더 눈도장을 찍으려는 샐러리맨들의 꼴불견을 자주 목격했다.
이런 여비서의 눈에 비친 샐러리맨의 세계는 어떨까? 13일부터 방영되는 KBS 2TV의 주간 단막극 ‘여비서’(일 밤8·50)는 이런 취지에서 기획됐다. 대기업 회장실 여비서인 오유경(심혜진 분)을 중심으로 커리어우먼과 샐러리맨의 애환을 그렸다. 연출은 MBC출신으로 독립프로덕션 ‘JRn’을 최근 설립한 황인뢰PD가 맡았다.
황PD는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등에서 섬세한 심리 묘사와 감각적인 영상을 보여준 연출가. 그는 이번 작품에 대해 “샐러리맨의 세계를 사실적으로 묘사하겠다”고 말한다. 첫회로 방영할 ‘전설을 만났을 때’ 편에서도 영상미보다 샐러리맨의 실체가 더 부각된다.
영어를 한 마디도 못하는 러시아 바이어가 약속보다 1시간 일찍 회장을 찾아 오자 비서실은 발칵 뒤집힌다. 응급처치를 위해 이러저리 뛰는 오유경이 있는가 하면, 면피를 위해 빠져나가는 유과장(이문수)도 있다. 상황은 러시아어를 구사하는 이지재(김여진)의 등장으로 해결되지만 그에게 경쟁의식을 느끼는 오유경은 개운치 않다.
드라마 ‘여비서’는 또 N세대 엘리트 직원이자 자유분방한 최수민(구본승)과 감성적인 청년 윤석범(지진희) 등 남성들을 등장시켜 여비서와의 사랑 이야기를 한 축으로 펼친다.
극 중에서 날카로운 엘리트 역을 해야 하는 구본승의 이미지 변신, 영화 ‘박하사탕’ 등으로 주목받은 김여진이 커리어우먼으로서 내딛는 야심찬 행보도 드라마를 흥미롭게 한다.
독립프로덕션 ‘JRn’은 황PD와 KBS출신으로 다큐 전문 전형태PD가 공동으로 설립한 회사. 전씨는 ‘JRn’의 전신인 ‘제이프로’를 운영하면서 ‘영상기록 병원 24시’ ‘암은 정복된다’ 등을 제작해 KBS 등에 납품해왔다. 두 전문 PD의 결합은 다매체 시대 국내 영상 문화의 질적인 발전을 가다듬을 수 있는 시도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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