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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웨이브2000]가로지르기/'이종학문간 교배'

입력 | 2000-02-14 07:30:00


8일 밤 서울 종로구 동숭동 수유연구실. 옥타비오 파스의 장시 ‘태양의 돌’에 대한 송상기박사(라틴아메리카 문학 전공)의 발표가 끝나자 럭비공이 튀듯 하는 예측불허의 질문과 토론이 경쾌하게 뻗어나갔다.

“파스의 시에 나타나는 ‘거울’은 라캉적인 거울과는 확연히 다르군요. 라캉의 거울, 즉 서양철학의 거울이란 말 그대로 반성(Reflection), 자기발견의 의미가 아닙니까?”(박태호박사·사회학)

“신화학적으로는 카오스였던 세계가 거울을 통해 자신을 발견함으로써 코스모스로 정돈된다고 설명되는 것인데요, 서구 사상은 이런 이분법의 틀을 계속 유지하고 있지요.”(조현설박사·국문학)

세미나 참석자는 11명. 이미 박사학위를 받았거나 학위과정에 있는 이들 중 발표와 동일한 전공자는 한 사람도 없었다. 미술사 신학 사회학 한국고전문학….

국문학 연구자라 하더라도 ‘고전문학’과 ‘현대문학’으로 전공이 다르면 얼굴 한 번 마주칠 일 없는 지식사회의 풍토에 비춰볼 때 이들의 만남은 이례적이다.

그러나 이들의 토론과정에서 이질성이 주는 긴장감이나 서먹함은 없었다. 자신과 다른 지적 작업의 성과와 접속점을 찾고 ‘핵융합’하는 데 따른 ‘확장’의 에너지가 느껴질 뿐이었다. 밤11시가 가까워 발표자 송박사에게 “‘거울과 표상’을 주제로 새 논문을 한 편 써보면 좋겠다”는 조언을 끝으로 세 시간여에 걸친 이날의 세미나는 끝났다. 여느날처럼 공동의 토론이 또하나의 지적 작업을 잉태한 것이다.

▼‘학제적’(Interdisciplinary) 접근을 넘어〓최근 몇 년 사이 대학사회의 유행어이자 경영지표가 돼 버린 ‘학제적’ 접근. 그러나 30, 40대 소장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이 ‘학제적’ 접근마저 넘어서서 새로운 형태의 지식인 융합을 모색하는 흐름이 활발해지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1999년 창설된 수유연구실과 연구공간 ‘너머’. 수유연구실은 고미숙박사 등 고려대 국문과 출신 연구자가 다수이고, ‘너머’는 박태호박사 등 서울대 사회학과 출신이 주축. 그러나 전공인 ‘국문학’ ‘사회학’의 틀은 이들에게 별 의미가 없다.

수유연구실의 태동계기는 단순했다. 한국 고전문학 연구자 몇몇이 푸코와 들뢰즈를 읽기 위해 강사를 초빙해 공부한 것이 단초였다. 출발은 소박했지만 이들의 지향점은 ‘근본을 뒤집는’ 거대한 것이다. ‘한국지식사회의 사유의 틀을 바꾸자’는 것. 90년대 초반 제도권 대학과는 다른 연구를 해보겠다며 재야연구소들이 생겨났지만, 그것이 인식론까지 바꾸지는 못했다는 반성이 이들의 활동에 깔려 있다.

“고전문학이나 국사학 등은 한국 인문학의 인식론적 기저입니다. 오랫동안 정치적인 힘은 강력하게 발휘하면서도 훈고학에 갇혀 있어 이론과 방법이 다 고갈됐죠. 이 학문들을 박물화하지 않고 지금의 삶과 연결시키려면 다른 학문과의 부닥침, 끊임없는 접속을 통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야 합니다. 문학 철학 경제학 영화 음악 과학 수학 등 각 분과학문의 경계를 넘어서는 ‘지식의 아방가르드’가 필요한 겁니다.”(고미숙박사)

‘학제적’ 접근을 부정하는 것은 그것이 ‘기계적 결합’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내 안의 경계, 나는 사회학자니까 어떤 공부를 해야 한다라는 식의 틀까지 허무는 것입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방법론이 아니라 연구자로서의 ‘새로운 삶’이지요.”(박태호박사)

▼가로지르기, 사유의 틀 바꾸기〓 왜 ‘경계 넘어서기’가 시도될까. 이른바 ‘80년대 세대’인 수유연구실과 ‘너머’의 연구자들에게 ‘경계 넘어서기’는 ‘근대의 초극(超克)’, 즉 ‘자본주의 넘어서기’의 21세기적인 실천이다. ‘자본주의적 근대’를 초극하려 했던 현실 마르크스주의는 1990년대 파산선고를 받았다. 다시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를 고민하는 이들 연구자들은 일상의 변화를 이루기 위해 영화 건축 음악 미술 사진 심지어 수학에 이르기까지 연구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이들이 극복대상으로 삼는 또 하나의 완고한 ‘경계’는 ‘민족’이다.

“조선 후기 사회의 ‘내재적 발전론’이 활발하게 논의된 것은 우리에게도 근대가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의식 때문이었습니다.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정약용이 기성의 질서 중 무엇을 깨려고 했는가가 규명되기보다는, 우리에게도 ‘실학이 있었다’는 주장들만 있었지요. ‘근대’와 ‘민족’을 정점에 두고 사고하는 데서 생긴 폐단입니다.”(박태호박사)

“한국 중국 일본 동아시아 3국중 한국의 계몽담론이 가장 빈약하다는 사실에 왜 열등감만 가져야 합니까? 민족의식에 발목잡힌 지식의 위계를 벗어나 평등하게 볼 수 있을 때에만 진정한 의미의 인터내셔널한 연구가 가능해질 겁니다.”(고미숙박사)

현재 공동공간을 사용하는 수유연구실과 연구공간 ‘너머’에서는 동아시아 근대강좌인 ‘계몽의 담론, 계몽의 사상가’ 등 매주 4회의 공개강좌와 몇몇 회원들끼리 운영하는 ‘계몽기 신문강독’ 등의 세미나가 진행된다. 대학생부터 대학교수까지 회원층은 다양하지만 주력은 전문연구자들. 전공은 산업공학부터 철학까지 다양하다.

중요한 것은 어제 철학을 강의했던 ‘선생님’이 오늘은 라틴문학의 ‘수강생’이 되는 ‘배움의 순환구조’를 통해 인식의 지평을 넓혀 나간다는 것이다.

자기학문의 영토에 갇혀있지 않고 인식의 틀을 확대하는 연구자들, 지식사회의 ‘전위부대’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이들의 목표다.

▼키워드-가로지르기▼

가로지르기(transversalit'·횡단)는 경계를 넘나드는 것을 말한다. 학문에서는 경제학 정치학 문학 물리학 화학 등의 학과(Discipline)를 경계라고 할 수 있다. 경계에는 또 교수와 학생, 의사와 환자 등 종적인 위계의 형식을 취하는 것도 있다.

경계에는 내적인 것과 외적인 것이 있다. 각 분과가 외적 경계라면 해당 학문을 연구하는 방법, 그 학문 내에서 굳어진 개념은 내적 경계라고 할 수 있다. 주어진 방법대로 연구하고 정설로 인정된 개념을 인용해 연구작업을 축적하는 과정을 통해 경계의 정체성(동일성)은 재생산된다.

가로지르기란 이처럼 안팎 이중의 경계에 의해 재생산되는 동일성(정체성)을 돌파해 새로운 사유와 연구, 실천을 생산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기존의 지배적인 가치, 삶의 방식, 체제(Regime) 등으로부터 벗어나는 ‘탈주(Fuite)’가 감행되어야 한다. ‘탈주’는 기존질서에 대한 ‘해체(Deconstruction)’라고 설명할 수 있다.

‘탈주’ 개념의 성립에는 생산양식이나 계급구조 같은 거대한 틀만이 아니라 일상생활의 미시적 영역에 은밀히 침투해 있는 지배메커니즘을 분석하고 그에 저항하려 했던 푸코 들뢰즈 가타리 등 프랑스 철학자들의 작업이 영향을 미쳤다.

가로지르기는 단순한 넘나듦이 아니다. 서로 다른 영역의 상이한 개념들이 접속되고 그 접속을 통해 새로운 양식이 창조될 때 가로지르기는 비로소 생산적 의미를 갖는다.

▼인터뷰-사회학자 박태호씨▼

사회학자 박태호씨(37)는 필명 ‘이진경’으로 더 널리 알려진 사람이다. 87년 낸 첫 책 ‘사회구성체와 사회과학방법론’은 변혁운동으로 들끓던 당시 대학가에 지적 충격을 안겨주었다. 그는 ‘얼굴 없는 운동권 이론권력’이었다.

그러던 그가 1990년대에는 영화를 강의하고 건축 수학 음악을 넘나들었다. 박사학위논문 주제는 ‘서구의 근대적 주거공간에서 주체생산방식의 연구’. ‘문화평론가’가 새로운 인기직종이 된 시대에 그도 지식인 엔터테이너로 변신했던 것일까.

“학과(Discipline)라는 단어에는 훈육, 즉 길들임이라는 뜻이 있지요. 각 학문의 영역을 넘나드는 것은 자본이 구축한 질서, 그 통제를 벗어나려는 것입니다.”

1990년대의 그를 지배한 의문 역시 왜 현실 마르크스주의는 파산하고 자본주의는 망하지 않을 수 있었는가였다. 그는 자신을 둘러싼 구체적 현실, ‘내가 서 있는 곳이 어디인가’에 눈을 돌렸다.

“나의 삶과 나의 육체를 둘러싸고 있는 근대성, 그것이 나를 어떻게 발목잡고 있으며 어떻게 그로부터 빠져나갈 수 있을까를 생각했습니다.”

마르크스주의의 생산양식, 계급적 조건 같은 공식으로 설명되지 않는 그 무엇, 무의식적인 삶의 방식을 만들어내는 근대적인 삶의 조건을 규명하려다 보니 그의 지적 편력은 영화 수학 음악 한국사상사로까지 자유롭게 확대돼 갔다. 1999년 그는 자신과 뜻을 같이하는 연구자들과 연구공간 ‘너머’를 만들기에 이르렀다.

그동안 “네가 하는 게 사회학이냐” “해당 분야 전문가도 많은데 사회학이나 하지”라는 질문이나 충고를 듣지 않은 바 아니다.

“아도르노가 음악에 관심을 갖는다고 해서 누가 문제삼았습니까. 기껏해야 입증할 수 있는 전문성이란 게 박사학위 같은 ‘자격증’이기 십상이지요. 중요한 건 밥그릇 싸움이 아니라 지적 접속을 통해 새로운 사유를 개척하는 것입니다.”

그는 곧 서양 근대성 형성에 수학이 한 핵심적 역할을 밝히기 위해 갈릴레이로부터 괴델까지 수학사의 변천을 조망한 책 ‘수학의 몽상’을 낸다.

ry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