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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중국의 힘]민간부문 활성화

입력 | 2000-02-14 19:54:00


중국 화다(華達)국제투자집단 이사장 리샤오화(李曉華·49). 베이징(北京)시민이라면 누구나 아는 베이징의 최고갑부다. 이탈리아제 스포츠카 페라리를 베이징에서 가장 먼저 타고 다닌 사람으로도 유명하다.

리샤오화는 베이징의 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나 문화혁명 때 홍위병으로 시위에 참가했다. 1969년에는 ‘지식청년’으로 찍혀 헤이룽장(黑龍江)성 베이다황(北大荒)에 하방(下放)됐다가 78년에야 베이징으로 돌아왔다. 그의 운명은 80년대 초 우연히 광저우(廣州)에 갔다가 미국산 아이스크림 제조기를 본 뒤 바뀌었다. 그해 여름 그는 하계휴양지로 유명한 보하이(渤海)만 베이다이허(北戴河)에서 아이스크림 장사를 시작, 떼돈을 벌었다.

85년은 또 한번의 기회였다. 신문에서 발모제(發毛劑) ‘101’이 개발됐다는 기사를 읽은 그는 그 길로 공장을 찾아가 일본지역 독점수출권을 따냈다. 이 사업이 리샤오화를 베이징의 최고갑부로 만들었다. 현재 그의 재산은 18억위안(약 2500억원). ‘101’ 개발자인 자오장광(趙章光)도 베이징의 3대 부자의 한 사람으로 떠올랐다.

‘돈벌이의 바다에 뛰어들자’는 ‘샤하이(下海)’열풍이 중국대륙을 휩쓴 것은 92년. ‘먼저 부자가 돼라’는 덩샤오핑(鄧小平)의 ‘선부론(先富論)’에 따라 ‘돈을 향해 달린’ 사람들이 성공을 거두면서 열풍이 불었다.

수많은 중국인들이 ‘돈벌이의 바다’에 뛰어들었다. 지난해말 현재 중국의 사영(私營)기업수는 650만개(추정). 당국에 등록된, 비교적 규모를 갖춘 기업만 헤아려도 148만개에 이른다. 이밖에 상대적으로 영세한 자영업자를 이르는 ‘거티후(個體戶)’가 6114만호(98년말)나 된다.

사영기업과 거티후들이 중국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날로 커지고 있다. 이에 따라 한때 ‘5류(類)분자’로 지탄받았던 ‘라오반(老板·사장님)’도 사회적 성공과 지위를 상징하는 단어로 바뀌었다.

중국은 98년 국무원 국가경제무역위원회 산하에 중소기업사(司)를 신설, 사영기업을 정책적으로 지원하기 시작했다. 지방정부도 빠르게 움직였다. 장쑤(江蘇)성은 중소기업서비스센터를 설치했고 저장(浙江)성은 보세지역을 설정, 사영기업의 수출입업무를 돕기 시작했다. 중국은 지난해에는 사유재산 보장을 헌법에 명문화했다. 이에 따라 사유제는 50년의 공백 뒤에 다시 중국경제를 구성하는 주요부분으로 떠올랐다.

중국은 올해 민간부문을 더욱 활성화할 계획이다. 경제를 지탱하는 ‘3두마차’인 수출 투자 소비를 증가시키기 위해서는 민간부문 활성화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쩡페이옌(曾培炎) 국가발전계획위원회 주임은 2월초 “중국은 향후 국채발행에 의한 투자의존도를 줄이고, 민간투자를 적극 장려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국가안전과 국가가 반드시 독점해야 하는 분야를 제외한 모든 분야에 민간투자를 허용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1월부터는 개인독자기업법이 시행돼 사영기업에 대한 많은 규제가 풀렸다. 사영기업 설립 때 자본금 규모과 종업원수를 제한하던 규정이 없어졌으며 ‘불과 1위안(약 140원)으로도’ 회사를 등록할 수 있게 됐다.

이에 따라 기업을 세우려는 중국인들이 크게 늘고 있다. 베이징 하이뎬(海淀)구 공상국에는 하루에도 수십통의 상담전화가 걸려온다. 상하이(上海) 난징(南京) 광저우 선전(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