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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이 살아야 금융이 산다]정상화로 가는 길

입력 | 2000-02-15 19:33:00


정부는 지난 2년간 은행퇴출 등 과감한 구조조정으로 금융시장 붕괴위기를 막고 금융시스템 정상화의 기반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이 과정에서 과도한 시장개입이 이뤄졌고 이로 인한 폐해도 적지 않다는 점에 정부는 대체로 동의한다.

이에 따라 올해부터 추진되는 2단계 금융개혁은 정부의 시장개입을 줄여 나가고 금융산업의 고부가가치화를 도모한다는 내용으로 짜여졌다.

하지만 학계와 연구소의 전문가들은 투신사 구조조정문제 등 금융불안요인이 여전히 남아 있으며 정부의 시장개입도 계속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이에 따라 정치적 이유로 남아 있는 부실금융기관을 과감히 정리하는 등 정부의 구조조정을 계속해 나가되 인사개입 등 전형적인 관치행태를 중단하는 일이 시급하다는 주문이다.

▼ 투신지분 최대한 빨리 처분 ▼

▽금융시장 정상화 위해 시장에서 발빼기〓조원동(趙源東)정책조정심의관은 “외환위기 이후 기본적 시장기능이 돌아가지 않아 정부개입이 불가피했다”며 “올해 과제는 정부가 시장에서 발을 빼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종구(李鍾九)금융정책국장도 “위기과정에서 금융참가자들의 역할이 모두 깨졌다”며 “이를 복원하는 과제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재경부는 우선 한국투신과 대한투신 등에 대한 정부지분을 최우선적으로 처분하겠다는 입장이다. 정부가 직접적 시장참가자인 한투 등의 지분을 갖고 있는 것은 시장기능 정상화의 첫번째 걸림돌이라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다만 정부지분을 빼낼 경우 한투와 대투가 자생력을 갖기 어렵고 정부손실도 최소화해야 하는 만큼 시기조절이 필요하다는 게 정부 입장이다. 정부출자 은행들의 민영화도 이 같은 점을 고려하여 추진하겠다는 것.

조심의관은 “내부구조조정 못지않게 외부환경도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며 “디지털경제화 등으로 전자금융거래 등이 활성화되고 있고 대형화 겸업화도 불가피한 추세”라고 말했다.

이 같은 흐름에 제대로 부응하지 못할 경우 금융부문의 구조조정은 공염불로 돌아갈 것이라는 게 조심의관의 분석이다.

이에 따라 관련 제도를 빨리 고쳐주고 시장이 하기 어려운 연구개발(R&D)투자나 초고속통신망에 대한 정부투자 등을 강화하여 국제경쟁력을 갖춰 나가겠다는 복안이다.

재경부는 올해 전문성과 건전성을 갖춘 금융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금융시장과 인프라의 개혁 △금융산업의 경쟁력 제고와 자율경영책임체제 구축 △금융구조조정 완결 등의 3대과제를 제시해 놓고 있다.

▼ 민영화추진 주체 아직 모호 ▼

▽금융자율의 전제조건〓서울대 강광하(姜光夏·경제학부)교수는 “금융시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기 때문에 정부가 시장에서 발을 빼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치적 지역적 이유 때문에 여전히 남아 있는 부실금융기관을 빨리 정리해야 한다는 게 강교수의 주장이다. 강교수는 “금융기관들도 정부에 ‘아니오’라고 할 수 있어야 한다”며 자율경영확보를 위한 금융기관의 노력도 촉구했다.

한국개발연구원 신인석(辛仁錫)연구위원은 “소유자란 경영권을 행사하는 동시에 마지막 뒷감당을 하는 사람”이라며 “정부는 지분이 있든 없든 뒷감당을 한다는 점에서 관치금융의 여지가 항상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대형은행의 파산사태라도 생기면 어떤 형태로든 정부개입이 이뤄지면서 관치금융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 따라서 자율책임경영체제를 확립하려면 ‘뒷마무리를 누가 얼마만큼 하는지’에 대한 분명한 기준을 제시해야 한다는 게 신위원의 주문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왕윤종(王允鍾)국제거시금융실장은 “아직도 한국경제가 불안한 이유는 금융시스템이 불안하기 때문”이라며 “가시적 성과에 연연하지 말고 벽돌을 쌓듯이 개혁작업을 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왕실장은 “남아 있는 과제는 금융기관의 민영화인데 이를 주도할 시장주체가 아직 형성돼 있지 않다”며 “시장기능의 정상화에는 많은 시일이 걸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mhjh22@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