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의 정치활동 선언을 둘러싸고 논란이 무성하다. 한국경영자총협회 전국경제인연합회를 비롯한 경제 5단체는 14일 의정평가위원회를 만들어 정치활동을 벌여나가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노동계를 비롯한 사회 일각에서는 정경유착의 심화를 걱정하고 있으나 재계는 노사문제에 국한할 것이며 ‘경제를 위한 정치’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라고 주장한다.》
▼찬성▼
최근 경제단체가 노사문제에 관한 의정활동을 평가하려는 계획을 세우자 노동계는 이를 정경유착으로 몰아세우고 있다. 그러면서 자신들의 정치활동은 민주화운동으로 미화한다.
경제계의 정치활동 필요성은 지난해 일부 여야 의원들이 인기영합 차원에서 ‘노조 전임자 급여지급금지 규정’ 삭제를 위해 무리하게 법 개정을 추진하던 과정에서 제기된 것이다. ‘무노동 무임금’과 같이 시장경제의 기본원칙을 무너뜨리고 노사관계의 기본을 뒤흔드는 중대한 사안이었기 때문에 경제계로서도 묵과할 수가 없었다.
경제계의 의정평가 활동은 반드시 필요하다. 더욱이 최근 노동계가 정도를 넘어선 정치참여를 하고 있기 때문에 의정평가라는 최소한의 견제장치가 마련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노사간에 심각한 힘의 불균형이 초래되고 노사관계가 왜곡될 가능성이 크다.
경제계의 의정평가에 대해 지나치게 우려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일부에서 주장하는 바와 달리 노사문제의 영역을 벗어나거나 정치자금을 조성하는 계획은 전혀 없다. 의정평가의 궁극적인 목표는 경제가 정치적 논리에 좌우되지 않고 정치가 경제적 논리를 중시해 건전한 시장경제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정치를 위한 경제’가 아니라 ‘경제를 위한 정치’가 되도록 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 뜻이 잘못 전달돼 오해를 할 수는 있을지 모르나 악의적 시각으로 곡해하려 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
정치 경제 사회 각 분야가 투명해지고 있으며 또 투명해지도록 제도가 개선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경제단체의 의정평가 활동을 과거의 시각으로 왜곡하고 폄훼해서는 안될 것이다. 오히려 그러한 왜곡된 시각을 바로잡는 것이 투명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선결과제다.
이동응
▼반대▼
재계가 새삼스럽게 정치활동을 하겠다니 그렇다면 지금까지 정치활동을 하지 않았단 말인지 의아스럽다. 역대 대통령의 대선자금, 대선에 출마한 재벌총수의 선거운동원으로 동원된 사원들의 이야기가 기억에 생생하다. 재계는 수십년간 합법 후원금은 물론 불법 정치자금으로 정치를 주물러 자신들에게 유리한 정치와 입법을 유도했다. 재계는 보수 정치인들과 결탁해 정경유착, 부정부패로 얼룩진 후진 정치판을 만들었다. 국제통화기금 관리체제를 부른 장본인이다. 재계는 검은 돈으로 정치판을 오염시켜 국민의 정치불신을 키워온 데 대해 먼저 겸허하게 반성해야 한다.
최근 낙선운동을 계기로 선거법이 개정됐고 재계는 이를 근거로 정확히 말하면 정치활동을 더 강화하겠다고 선언했다. 모든 국민에게 정치활동의 자유가 보장돼야 하고 재계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그러나 내용을 들여다보면 재계의 정치참여는 부족해서가 아니라 지나쳐서 문제다. 재계의 선언은 재벌과 보수 정치권이 독점해온 정치판에 소외된 노동자와 국민의 목소리를 반영하자는 법개정 취지를 거꾸로 해석한 것이고 낙선운동 열기에 찬물을 끼얹으려는 것이다.
재계는 정치활동이 노사관계에 국한된다고 하지만 활동영역을 넓히는 것은 시간문제다. 재계를 편드는 후보에게만 후원금을 준다고 하니 가뭄에 콩나듯 있는 ‘서민편’ 정치인들은 설 땅을 잃을 것이다. 경제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중소 영세기업은 정치활동을 엄두도 못내는 현실에서 재계의 정치활동은 엄밀하게 말해 소수 재벌의 정치활동이며 그 효과도 재벌의 정치영향력 강화로 모아질 것이다. 재계의 정치활동 강화 선언은 정경유착을 합법화하고 재벌의 영향력을 확대해 정치발전에 큰 악영향을 끼칠 것이다.
손낙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