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방송계가 디지털 TV 수신료 징수 문제를 둘러싸고 치열한 논쟁을 벌이고 있다. 정부가 1998년 9월 디지털 방송을 시작한 BBC의 재원을 충당하기 위해 가입자를 대상으로 월 15파운드(약 2만7000원)의 수신료를 징수하겠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즉 현재의 수신료 월 101파운드(약 18만원) 외에 디지털 방송을 시청하는 수신료를 추가로 징수하겠다는 것이다.
크리스 스미스 미디어부 장관은 디지털 수신료 징수를 기정사실화하면서 “수신자 현황을 파악하기 위해 ‘온 디지털’ 같은 유료 지상파 디지털 방송에 대해 가입자 정보를 제출하도록 의무화하는 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영국 정부는 당초 BBC 디지털 방송을 이유로 3년전에 수신료를 인상했으며 시청자들에게 추가 부담은 없을 것이라고 말해왔다. 그러나 180도 방침을 바꾼 이유는 BBC의 디지털방송 예상 재원이 당초 1억7000만 파운드(약 3082억)에서 6억 파운드(약 1조800억원)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영국 정부는 또 21세기 세계 디지털 미디어 전쟁에서 BBC가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수신료 추가 징수가 불가피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같은 정부의 방침에 대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고 나선 곳은 민영 지상파인 ITV와 머독 소유의 위성방송 BSkyB 등 민간방송사다. 이들은 “디지털 수신료는 불공정 경쟁을 초래하는 정부 보조금에 해당한다”며 유럽위원회에 제소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이들은 특히 “디지털 수신료는 새로운 세금과 같다”며 조세 저항의 차원으로 여론을 조성하고 나서면서 스미스 장관의 가입자 정보 제공 요구에 대해서도 거부방침을 공언했다.
의회도 정부편이 아니다. 의회특별조사기구인 데이비스 위원회는 “BBC의 디지털 재원은 내부의 구조 조정 등 자구 노력으로 확보해야 한다”며 디지털 추가 수신료에 반대하는 입장. 특히 여당인 노동당의 린 골딩 의원도 “BBC는 비효율적인 조직”이라며 “BBC는 더이상 무임승차하는 식의 운영을 해서는 안된다”고 못박고 있다.
이에 따라 영국의 디지털 수신료 문제는 정부측의 BBC 경쟁력 강화 명분을 국민들이 얼마만큼 납득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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