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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지하공동구 화재]소방시설-지도없는 '무방비지대'

입력 | 2000-02-20 20:02:00


우리나라 증권가의 심장부인 서울 여의도 지하공동구에서 발생한 화재는 무방비가 빚어낸 예고된 ‘인재(人災)’였다.

국가적인 기간시설이 공동구에 몰려있음에도 스프링클러 등 기본적인 화재방지시설조차 갖추지 않아 ‘작은 화재’를 진압하는 데 무려 17시간이 걸렸다. 더욱이 일선 금융기관에서 전용선이 손상됐을 경우에 대비한 ‘백업(Backup)회선’ 체계도 원활하지 못해 화재가 평일에 일어났을 경우 걷잡을 수 없는 ‘금융대란’으로 이어졌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부실한 소방시설〓불이 난 지하공동구에는 15만4000V의 고압배전선로와 초고속광통신망, 유선방송케이블, 상수도관 등 중요시설이 묻혀 있었지만 화재경보시스템이나 방화벽, 유독가스를 배출할 수 있는 환기시설은 물론 스프링클러 하나 설치돼있지 않았다. 유독가스 배출 환기구도 변변치 않아 화재를 진압한 뒤에도 유독가스를 빼내느라 시설복구가 지연됐다.

이는 지하공동구가 소방법상 소방점검대상이 아니기 때문. 95년에야 소방법이 개정돼 지하공동구를 소방대상물에 포함시켰지만 이 법도 94년 7월 이전에 만들어진 지하공동구를 대상에서 제외했다. 일본이 70년대 말부터 공동구에 관한 특별관리법을 시행하고 일반건축물과 마찬가지로 공동구 내 방재시설설치를 의무화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허술한 관리체계〓불이 난 지하공동구는 96년 6월 서울시 시설관리공단의 안전진단 결과 시설노후화로 누전가능성이 높은 곳으로 지적됐다. 공단은 이를 서울시에 보고했고 시는 다시 소방방재본부 한국통신 한국전력 등에 시정명령을 내렸지만 아무런 조치가 없었다.

한마디로 지하공동구에 대한 관리주체가 명확하지 않았다는 것. 정확한 화인(火因)이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노후된 전력시설에 과부하가 걸려 불이 났다는 지적이 유력한 만큼 안전진단결과에 대한 시정만 제대로 이뤄졌더라도 이번 화재는 얼마든지 예방할 수 있었다는 지적이다.

또 지하시설물의 화재를 효과적으로 진압하는 데 필수적인 지하지도가 없었다는 점도 문제다. 지하지도가 없어 화재를 진압하기 위해 출동한 소방요원과 관계자들은 18∼19일 밤새도록 화재가 어디서 발생해 어디로 번지는지도 파악하지 못했다.

▼금융권 비상대책 미비〓통신부문에 있어 증권거래소 은행 등 금융권은 일반적으로 3단계 예비복구(백업)방식을 쓰고 있다. 금융기관의 전용선이 훼손될 경우 통신회선을 한국통신의 ISDN망으로 돌리고 만약 이마저 불가능해지면 일반전화선을 이용할 수 있다는 것. 그러나 통신회선을 다음 단계로 이전하는 데 몇시간이나 걸려 만약 평일에 증권거래소 메인망이 손상을 입었다면 최소한 몇시간 동안 증권거래가 대혼란에 빠졌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또 각 백업체계가 갖춰있는 금융사간의 통신망과 달리 같은 은행 지점사이에서는 백업방식이 도입돼있지 않은 곳이 많아 이번 화재로 19일 9개은행 13개지점이 업무를 중단하기도 했다.

roryrer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