훤칠한 키(1m73)에 비해 가냘픈 몸매로 ‘청순가련형’으로 보이는 여고생 김지은양(18·서울 동덕여고 2년).
하지만 겉모습과 달리 김양은 합기도 3단, 킥복싱 3단으로 ‘합계 6단’인 무술유단자다.
김양은 지난해 10월 일본 도쿄 고라쿠엔경기장에서 열린 국제 공수도대회 라이트급에서 세계 고수들을 차례로 꺾고 챔피언을 차지했다.
수줍음을 잘 타는 여고생, 무시무시한 격투기 챔피언. 도무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두모습이 ‘공존’하고 있는 것.
그렇다고 그가 흔히 무술영화에서 보듯 집안의 무슨 원한을 복수하거나 ‘큰 뜻’이 있어 무술을 연마한 것은 아니다.
어릴 때부터 그냥 좋아서 꾸준히 따라하다 보니 무술 고단자가 된 것뿐이다.
그가 운동을 처음 시작한 때는 초등학교 4학년 겨울방학.
김양의 아버지 김재경씨(46)가 몸이 약한 막내딸이 운동에 관심을 갖게 해 보려고 “동네에 유명한 ‘차력사’가 한 분 계신데 한번 배워보지 않겠느냐”고 ‘꼬셨다’.
당시 졸지에 ‘차력사’로 둔갑한 사람은 서울 신림동에서 합기도 도장을 운영하던 전 세계 실전격투기 챔피언 이각수씨(40).
초등학생 김지은은 난생 처음 찾아간 합기도 도장에서 여자 유단자가 부채와 지팡이로 한순간에 상대를 넘어뜨리는 것을 보고 감탄해 그날부터 운동에 빠졌다.
이각수관장은 “얼마간 열심히 하다가 그만두겠지라고 생각했던 지은이가 만 7년째 열심히 운동하는 걸 보니 너무 자랑스럽다”고 말한다.
왜 그토록 운동에 빠졌을까.
“운동을 시작한 지 3개월쯤 됐을까요, 갑자기 하기 싫어졌어요. 그런데 며칠 도장을 빠졌더니 몸이 근질근질하더라고요.” 운동을 계속한 이유가 의외로 간단하다.
그가 합기도와 킥복싱을 한다는 사실을 서너명의 친한 친구 외엔 아무도 몰랐다고. 남녀공학인 사당중학교 2학년이 돼서야 그는 학교내에서 이름이 알려지게 된다.
남자아이들끼리 ‘태권도가 좋다, 합기도가 좋다’하며 논쟁을 벌이다 한바탕 주먹다짐이 벌어졌는데 얌전한 줄만 알았던 김지은이 나서 합기도 실력을 발휘한 것.
그의 ‘비공식’실력발휘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여덟살 위인 큰언니의 밤길 보디가드 역할을 4년째 계속하고 있다. 가끔 마구잡이로 손목을 잡는 치한들이 ‘실전 대상’이 되기도 한다.
김양은 건설회사에 다니던 아버지가 해외근무중이던 사우디아라비아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지난해 7월 17년만에 해외에 나갔다.
캄보디아 대통령궁 초청 합기도 시범대회에 시범단 27명의 일원으로 태극기를 가슴에 달고 참가한 것. 또 10월에는 일본 국제 공수도대회에서 ‘합기도 기술’로 당당히 우승을 차지했다.
그는 그렇다고 무술을 전공할 생각은 없다. 3월이면 고3 수험생이 되는 그는 진로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본 결과 연극영화과에 진학해 연기를 전공하기로 마음먹었다.
“합기도는 남들이 할 수 없는 나만의 특기로 액션물을 한다면 홍콩영화 ‘예스 마담’의 주인공 양자경보다 더 잘할 자신이 있다”고 힘줘 말한다.
쌍절봉 돌리기와 발차기가 주특기인 그는 도복 대신 단정한 정장 차림으로 인터뷰에 응했다.
웬 정장이냐는 물음에 그는 “예쁘게 보이려고요”라고 대답하며 환하게 웃었다.
▼불교와 함께 국내전래 우리고유 무술 발전▼
합기도는 3000여년 전 인도에서 시작된 무술로 불교의 국내전파와 함께 수도승들에 의해 비전돼왔다. 삼국시대 백제에서 국민의 체력단련과 정신수련을 위해 합기도가 널리 보급됐다.
의정왕과 충혜왕이 궁 안에서 합기도 시범을 보였다고 전해질 정도. 결국 한반도에서 합기도가 계승발전돼 한국고유의 무술로 자리잡은 것.
하지만 조선시대에 들어 불교가 쇠퇴하고 유교의 번창으로 무술을 천시하는 바람에 합기도는 몇몇 승려들 사이에서만 보전전수됐다.
합기도가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광복 후 최용술 도조가 5명의 제자들을 가르치면서부터. 이들 5인 제자들이 50년 이후 전국에 합기도 보급에 나섰다.
현재 합기도를 가르치는 체육관 수는 3000여개로 지금까지 약 300만명이 합기도를 연마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외 보급도 활성화돼 70개국에 보급이 됐다.
상대방의 힘을 이용하는 운동인 합기도는 특히 호신술로 각광을 받고 있다.
합기도는 500여가지의 기본기술에 1000여가지의 변형기술이 가능하다. 부채 지팡이 검 등을 이용한 활용법이 많은 것도 이와 같은 이유.
je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