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통화기금(IMF) 경제위기 극복과정에서 우리 사회의 빈민층이 생존의 극한위기에 내몰리게 되었다. 정부도 이를 좌시할 수 없어 생산적 복지정책을 강구하게 되었으나 빈민층에 대한 지원을 정부가 전적으로 담당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8일 김대중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최대 흑자기업들이 빈곤층 지원에 나서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한 발언에서도 정부의 이러한 한계가 나타나 있다. 빈민층에 대한 지원을 정부가 전적으로 담당할 수 있다면 구태여 기업들에 이러한 요청을 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기부금은 대개 외부의 강요에 의하거나 분위기상 마지못해 내는 사례가 많다. 이번에도 김대통령의 발언으로 인하여 기업들이 기부금 내기를 강요받고 있는 듯하다. 외국에서는 경기가 호황을 띠게 되면 기업이나 개인들이 경쟁적으로 자선단체나 대학교, 예술단체 등에 막대한 기부금을 내는 것을 볼 때 그저 부럽게만 느껴진다.
기부금에 대한 정부의 정책을 보면 97년 이전에는 기업의 경우 소득의 7%를 조금 넘는 금액의 범위 내에서 비용 공제가 허용되었으나 98년 이후에는 소득의 5% 범위 내로 제한하였다.
이와 같이 기부금의 공제한도를 제한하게 된 배경은 기부금이 준조세의 일종으로 기부금 납부가 기업의 경쟁력을 저해한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기부금 납부에 대한 정책지원이 강화되면 자선단체 등에 대한 개인이나 기업의 기부금 납부가 늘어날 것이고, 정부는 그만큼 빈민층 지원에 대한 부담을 덜게 될 것이다. 외국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기부금에 대한 소득공제의 폭을 확대하면 정부가 잃게 되는 조세수입 이상으로 자선단체 등에 대한 기부금이 증가하여 빈민층이 크게 혜택을 입게 된다.
기부금에 대한 비용공제 한도를 97년 이전처럼 소득의 7% 수준 이상으로 확대하여 기부금을 납부하려는 기업을 지원하여야 한다. 기업들의 기부금 납부를 억제하는 현재의 제도 탓인지는 몰라도 국세청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최근 3년간 기업들의 기부금 지출은 계속 감소 추세에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에 반하여 기업들의 접대비 지출은 IMF사태라는 어려운 경제 여건에서도 3년 연속 증가하고 있다. 우리 기업들이 접대비보다는 기부금 납부를 자랑스러워하며 기부금을 많이 낸 기업이 대우받는 사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일부 종교의 신자들은 십일조라 하여 최소한 소득의 10% 이상을 종교단체에 내는 것을 생활화하고 있다. 그러나 연말정산할 때 보면 그들이 낸 기부금의 전액이 아니라 절반 이하만 소득공제를 받는 것을 알게 된다. 이는 국가가 신자들의 십일조 납부를 바람직하지 않은 것으로 보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개인은 기부금에 대한 소득공제 한도를 현재 소득의 5% 수준에서 최소한 소득의 10%를 초과하는 수준 혹은 미국과 유사한 수준(소득의 50%)으로 대폭 확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기부금을 강요에 의해 마지못해 내는 것보다 기쁜 마음으로 낼 수 있도록 사회적 여건을 조성해 주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그러한 여건을 만들어 놓은 후에는 대통령을 포함한 어느 누구도 기부금 납부를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 미국 기업을 보더라도 기부금 납부가 자발적으로 이루어지는 한 기부금 납부로 인하여 기업의 경쟁력이 저해되지는 아니한다. 민간의 기부금 납부에 대한 정부의 정책지원이 강화되면 빈민층에 대한 지원을 정부가 전적으로 부담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과 시민단체 및 일반시민 등이 분담하는 체제가 확립되어 갈 것이다.
손광락(영남대 교수·통상 경제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