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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며 생각하며]박미라/폭력적 남성은 모두의 적

입력 | 2000-02-22 19:03:00


2년 전 스위스의 한 여성정치모임은 ‘남자들에게 폭력세를 물리자’는 주장을 했다. 남성들이 가정과 사회에서 폭력을 행사함으로써 지출되는 정부 돈이 만만치 않으니 당연히 남자들이 세금을 내야 한다는 소리다.

독일의 페미니즘 잡지 ‘엠마’에 실린 이 기사를 처음 접했을 때 참 재미있는 발상이라고 생각하면서 웃어넘겼다. 그런데 나는 요즘 한국이야말로 남성들에게 물리는 폭력세가 정말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밤길을 걷다가, 부당한 일에 항의를 하다가, 운전을 하다가, 논쟁을 하다가, 사이버공간에서, 차안에서, 직장에서, 가정에서 수없이 폭력적인 언어나 무력과 맞닥뜨린다. 어떤 남성들은 지하철 여성전용칸이 생겼다는 것에 대해 상당히 분노하는 것 같은데 사실 그건 여자들에게도 기쁜 일은 아니다. 도대체 누구로부터 보호받기 위한 것인가 생각하면 서글퍼지기까지 한다.

한국의 여성으로 한국 남성들이 너무 무섭다. 여성운동을 하면서는 더욱 그렇다. 얼마 전에도 이프는 군필가산점제도 논쟁에 휘말려들어 엄청난 욕의 세례를 받아야 했다. “군필가산점제도 폐지하자는 여자들은 삼청교육대 보내야 한다.” “밤길을 조심하라.” “이기적이고 싸가지 없는 X들….” 이런 협박과 모욕성 글들이 수없이 PC통신 게시판에 올라왔다. 그들은 마음에 들지 않는 여성들에게 이처럼 폭력을 암시하는 내용으로 협박한다.

길거리에서도 종종 이런 일을 당한다. 상대가 여성운전자라는 것을 알게 되면 남성들은 대뜸 눈을 부라리고 욕을 하면서 위협을 해온다. 삼십 중반을 넘어선 데다 페미니스트라고 자처하는 내가 물론 그 수에 쉽게 넘어가지는 않는다. 같이 소리를 지르며 싸우거나 따지기라도 한다. 그래도 분이 안풀릴 정도로 심하게 당하고 나면 어떻게 해서든지 상대 운전자의 주소지와 전화번호를 알아내 전화로 따진다.

이프 사무실에선 젊은 친구들도 곧잘 이런 일을 한다. 택시운전사가 불쾌하게 했다면 차량번호를 외워뒀다가 바로 택시조합에 신고를 해 대응을 한다. 이렇게 여성들의 저항이 이어져야만 남성들이 여성들을 우습게 보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나보다 젊은 친구들, 내 딸 세대가 우리와 같은 폭력 문화 속에서 살지 않았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에서 하는 저항이다. ‘까짓거, 더 험악한 꼴 당하느니 이 순간만 참자’ 하는 생각이 다른 여성들을 줄줄이 폭력 앞에 서게 할 수도 있다.

어쨌든 약자라서 당하는 폭력과 위협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고 또 경험하게 되면 남성들에게 원천징수 폭력세라도 물리고 싶어진다. 사실 국가적으로도 얼마나 손해인가. 경찰과 법원 조직의 운영에 드는 돈, 의료처치 비용, 교도소 운영비, 경제활동의 손해 등으로 일어나는 손실이 적지 않다.

게다가 피해자인 여성들이 예산증가에 따른 세금을 부담하고 있지 않은가. 1994년 뉴질랜드에서 실시한 조사에 의하면 가정 내 남성폭력 하나 때문에 정부가 매년 지출하는 돈의 액수가 양모 총 수출액과 맞먹는다는 것이다.

‘나는 폭력적인 사람이 아니다’라고 억울해하는 남자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 남성들에겐 이렇게 묻고 싶다. ‘다른 남성들이 행사한 폭력 때문에 혹 이익을 보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보라’고 말이다. 남성의 폭력을 경험한 여성들은 다른 남성들도 두려워하게 되고 고분고분해지기 마련이다. 그런 이익을 챙기려는 게 아니고서야 같은 남성들이 여성들에게 폭력을 행사할 때 어떻게 수수방관만 할 수 있단 말인가.

남성들은 페미니스트들이 남성과 여성을 적대적으로 분리시킨다고 원망하지만 여성들의 마음에 쌓인 남성들에 대한 공포심과 분노는 남성들의 폭력, 그리고 방관하는 남성들의 이기심으로부터 생겨났다. 여성들과 인간적으로 대화를 나누고 싶다면, 발전적인 논쟁을 벌이고 싶다면, 여성들로부터 진정한 동의를 얻어내고 싶다면, 그대 남성들이여, 먼저 폭력적인 남성들을 비판하고 저지해야 할 것이다.

박미라(페미니스트저널 이프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