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을 거치지 않고 최근 비디오로 출시된 영화 ‘티 위드 무솔리니(Tea with Mussolini)’는 ‘로미오와 줄리엣’ ‘제인 에어’ 등으로 유명한 이탈리아 감독 프랑코 제피렐리의 신작.
2차대전이 발발하기 직전인 1935년. 이탈리아 피렌체에 여행을 온 영국의 늙은 귀족 여인들 중 매리(조안 플로라이트 분)는 우연히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어린 소년 루카를 돌보게 된다. 아라벨라(주디 덴치)와 부유한 미국 여성 엘사(셰어)는 루카에게 피카소의 작품을 보여주며 미술에의 꿈을 키워준다. 우정으로 맺어진 이들의 관계는 2차대전이 터진 뒤에도 변하지 않는다.
제목은 영국 귀족 여인 중 한 명인 헤스터(매기 스미스)가 무솔리니를 방문해 함께 차를 마시는 장면에서 따온 것. 헤스터가 “무솔리니가 우리를 보호해줄 것”이라는 순진한 기대를 버리지 않는 동안, 헤스터의 집에는 파시스트들이 침입해 그림과 영국 차를 몽땅 망쳐놓는 사건이 일어난다.
대책없이 순진한 할머니들이지만 결국 전쟁을 거치며 승리하는 쪽은 파시스트가 아니라 이들이다. 할머니들이 몸을 던져 고풍스러운 탑을 폭격하려던 이탈리아 군대를 저지하는 장면에선 제피렐리 감독의 미와 예술에 대한 옹호가 드러난다. 그러나 전쟁의 와중에 드러나는 인간성과 예술의 파괴에 대한 깊은 탐색 없이 노인들의 수다처럼 좀 한가하고 무기력해 보이는 코믹 영화.
가수 겸 배우인 셰어는 완벽한 ‘미스 캐스팅’. 인공적 이미지가 강한 그는 루카에게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고, 성장한 루카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미스터리한 분위기의 성숙한 여인 역할에 영 어울리지 않는다. 엘리자베스 여왕 역할을 주로 맡던 근엄한 이미지의 주디 덴치의 발랄한 변신이 그나마 볼 만하다. 출시사 C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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