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시중은행이 고객의 금융정보를 마음대로 빼내 자신들이 발행한 신용카드의 이용실적을 올리는데 쓰고 있어 물의를 빚고 있다. 이같은 일은 특히 카드를 발급받은 뒤 잘 사용하지 않는 고객을 대상으로 하고 있어 은행이 ‘반강제로 카드를 사용케 하려는 것 아니냐’는 비난을 받고 있다.
자영업자인 황모씨(49)는 최근 BC카드 이용명세서에 자신도 모르게 전화요금 5만원이 카드로 결제된 것을 발견했다. 카드를 발급받은 은행 지점에 찾아가 문의한 결과 그동안 은행계좌에서 자동이체되던 통신요금이 카드로 결제되도록 은행측에서 처리한 것으로 드러났다. 즉 은행 지점 직원이 황씨대신 ‘신용카드 통신요금 자동납부 신청서’를 작성하고 서명을 해 한국통신측에 보내 버린 것.
황씨는 “신청서를 작성한 적도 없으며 해당 은행 지점에서 그런 통보를 받은 적이 없다”며 “액수는 적지만 은행이 고객의 금융정보를 허락도 없이 마음대로 이용한다는 점에서 놀랐다”고 말했다.
실제로 자신도 모르는 사이 전화요금과 이동통신요금이 카드로 결제되거나 이같은 사실을 모르고 있다가 통신요금을 연체해 피해를 본 사례가 소비자보호원 YWCA, 소비자문제를 생각하는 모임 등의 시민단체에 100건 가까이 접수된 상태다.
이중 이동통신회사에서 고객 정보를 유출한 경우도 있지만 은행에서 임의로 카드에 통신요금이 결제되도록 연결시켜 놓은 것도 다수 포함돼 있다는 것이 시민단체의 얘기다.
은행들의 이같은 편법행동은 각 은행 지점에서 발급된 신용카드의 이용실적에 대해 2∼3%의 수수료를 나눠 갖게 되기 때문에 가급적 실적을 부풀리기 위한 것이다. 즉 계좌에서 직접 빠져나가는 통신요금이 카드 이용실적으로 한번 잡혔다가 빠져나갈 경우 은행으로서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을 수 있는 것. 또 은행 본점에서 각 지점의 카드이용 실적을 독려하고 있는 것도 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실제
황씨가 거래했던 은행 지점의 관계자는 “주로 카드를 사용하지 않는 고객의 리스트를 뽑아서 이렇게 하고 있다”며 “우리 지점에서 200∼300명의 고객에 대해 통신요금결제를 신용카드에 연결시켜 놓았으나 대부분 사후에 전화로 통보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추후에 통보하는 형식도 문제일 뿐만 아니라 대상이 많을 때는 아예 통보도 하지 않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는 것.
이에 대해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신용카드 자동납부신청서는 본인이 직접 서명을 해야 하기 때문에 추후 통보하는 것도 문제가 될 뿐만 아니라 은행이 이를 임의로 작성했다면 일종의 카드도용행위로 밖에 볼 수 없다”며 “은행 일선 지점에 이같은 사례가 있는지 조사해 필요하다면 행정지도를 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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