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아침 서울 한강 성수대교를 빠른 걸음으로 건너 출근하는 사람이 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테크노 경영 대학원 문송천 교수(48)가 바로 그 사람이다.
문교수에게 출근길은 마라톤 훈련코스와 같다. 굳이 마라톤을 내세우지 않더라도 문교수는 매일 아침 서울 강남 압구정동 자택에서부터 강북 홍릉 연구실까지, 그것도 직선이 아니라 빙 둘러 뛰듯 걷듯 출근하는 일을 습관처럼 해오고 있다.
문교수는 다음달 19일 동아서울마라톤 마스터스 풀코스에 참가 신청을 한 아마추어 마라토너. 마라톤 경력이 몇 년 되지 않은데다가 내세울 만한 기록도 없다. 한마디로 ‘초보 마라토너’. 하지만 문교수의 마라톤 사랑은 그 누구 못지 않다.
문교수의 전공은 어딘지 마라톤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 ‘컴퓨터’. 국내 ‘전산학 박사 1호’인 문교수는 학계에서 데이터베이스 전문가로 통한다.
문교수는 어지간한 운동에 모두 자신이 있다. 특히 축구와 테니스 실력은 수준급. 한국과학기술원 테크노경영대학원의 ‘축구 지도 교수’이기도 한 문교수가 축구 동아리를 만들어 제자들과 함께 운동장을 누빈 지도 10년이 넘었다. 테니스 역시 전국 전산인 테니스 대회에서 우승한 경험이 있을 정도의 실력자.
그러나 마라톤 쪽으로 돌리면 입장은 달라진다. 비록 완주 경험이 있다고는 해도 입문한지 얼마 되지 않은 마라톤은 아직 문교수에게 ‘생소한 분야’. 그렇지만 문교수는 분명 마라톤을 좋아한다. 마라톤이 주는 ‘감동’ 때문이다. 문교수의 아침 출근길은 마라톤에서 느끼는 이 ‘감동’을 미리 맛보는 시간이다.
축구나 테니스에서 골을 넣거나 스매싱을 할 때 느끼는 것은 희열일 뿐 감동은 아니다. 마라톤은 출발 시작점부터 42km가 넘는 종착점까지 한 순간도 포기할 수 없는 긴장의 연속이다. 이 긴장이 바로 감동이고 문교수가 말하는 마라톤의 매력이다.
문교수는 “마라톤에는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는 기적이 있다”고 말한다. 이 기적은 출발 30km지점에서 일어난다. 스스로도 도저히 완주하지 못할 것 같던 코스가 30km 지점을 통과하면서 불가능이 가능으로 역전되는 것을 느낀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될 것 같던 이 ‘큰 일’을 자기 몸에서 나오는 능력만으로 해낸다는 것이 기적이 아니고 뭐냐는 것이다.
마라톤에는 또 다른 감동이 있다. 반복적인 손과 발의 놀림이 교차되면서 머릿속에는 ‘뛰지 못하는 이들’에 대한 연민의 정이 떠오른다. 평소에는 이런 미안한 감정이 그저 생각 한 쪽을 지나쳐 갈 뿐이다. 그러나 달리다 보면 몸이나 마음이 불편한 이들에 대해 미안한 감정이 사무치게 된다.
문교수는 요즘 동아서울마라톤의 ‘1미터1원’ 운동의 후원자를 모으고 있다. 실천을 통해 마라톤에서 얻은 감동과 기적을 레이스 다음까지 이어가고 싶기 때문이다.
50여명의 동료 교수들이 후원회까지 만들어 모금 운동에 참여했다. 학교 대표로 참가하는 문교수에게 학생들이 보내는 호응도 만만치 않다.
문교수는 여기에 스스로 정한 ‘1미터10원’의 성금을 더해 백혈병 어린이를 돕기로 했다.
문교수는 앞으로 20년은 더 마라톤을 하고 싶다. 감동과 기적을 체험하는데 20년은 너무 짧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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