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칭 민주국민당의 창당 발기인대회를 지켜보는 우리의 심경은 착잡하다. 무엇보다 총선을 불과 40여일 앞둔 시점에서 급조된 정당의 출현은 우리 정치의 후진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정치적 이념이 같은 사람들도 아니고 뚜렷한 정강정책도 없이 오로지 선거에 나서기 위해 우르르 모여 당을 만드는 행태는 그들이 내세우는 이유나 명분이야 어떻든 시대적 요구인 정치 개혁과 정치 발전에 역행하는 처사라고 아니할 수 없다.
민국당은 발기 취지문에서 “지역주의 정치, 권력만을 추구하는 1인 정치를 청산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민국당의 창당이 지역주의를 청산하기는커녕 더욱 악화시키리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은 것이 현실이다. 민국당은 겉으로는 ‘전국정당화’를 외치고 있으나 현실적으로 ‘영남 지역당’의 한계를 벗어나기 힘들 것이라는 징후를 여러 면에서 보여주고 있다.
민국당 지도부가 줄줄이 김영삼전대통령(YS)을 방문해 지원을 호소하는 것도 그 실례의 하나로 보인다. 더구나 엊그제 민국당에 합류한 김광일(金光一)전대통령비서실장은 “꼭 말을 해야 아느냐”라며 YS의 신당 지지를 노골적으로 암시했다. 이 또한 YS의 이름을 빌려 영남 지역정서를 부추기자는 것이란 것쯤은 삼척동자도 알 수 있는 일이다.
우리는 이미 본란을 통해 YS가 현재의 야권분열 사태와 민국당 창당에 어떤 형태로든 개입하지 않는 것이 전임 대통령으로서 나라와 국민을 위하는 길이라고 밝혔다. YS는 더 이상 침묵으로 ‘묵시적 동의’를 즐기는 듯해선 안된다.
민국당은 창당발기인 면면에서 알 수 있듯이 한나라당을 비롯한 기존 정당의 공천 탈락자 와 철새정치인 및 5, 6공 세력 등이 주력을 이루고 있다. 물론 일부 재야 개혁세력과 출신지역이나 정치적 기반이 다양한 인사들도 참여하고 있어 전국정당화의 인적 구조를 갖췄다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민국당의 실체를 면밀히 살펴보면 그 주장은 설득력이 약하다. 오히려 민국당의 창당으로 오는 총선이 88년 4월 총선때처럼 4당 4색의 지역주의 대결로 치달을 위험성이 한층 높아진 것이 눈앞의 현실이다.
시민단체의 낙천 낙선운동으로 불붙은 국민의 정치 개혁 열망이 주로 퇴출대상 정치인들이 살아남기 위해 급조한 정당과 지역주의 악화로 다시 좌절된다면 이는 역사의 흐름을 거스르는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민국당 창당 발기인대회에 유감을 표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