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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저]버려진 섬 외도 30년동안 낙원으로 가꿔

입력 | 2000-03-01 19:31:00


한반도에 산재한 3300여개의 유인도 중 유일하게 입장료를 내고 관람하는 개인소유의 해상관광농원 외도. 하루 3000명, 많으면 1만명이 찾는 이 섬은 아름다운 풍광으로 해금강과 함께 거제의 명소가 됐다. 그러나 31년전 이창호 최호숙씨 부부가 이 섬을 사서 개발하기 전까지만 해도 이 섬은 단 6가구만이 살며 이제나 저제나 떠날 궁리만 하던 절해고도였다.

이씨가 이 섬에 오게 된 것은 접대차 낚시하러 거제에 들렀을 때. 폭풍우를 피해 이 섬에서 하룻밤을 지내던 중 ‘이런 섬 하나 있으면 좋겠다’고 한 말 한마디가 ‘화근’이 됐다. 어떻게든 섬을 뜨려했던 집주인은 귀경하는 이씨에게 아들까지 동행시키며 끈질기게 설득했다. 결국 이씨는 6개월 후 800만원에 이 섬을 샀다.

그러나 이때부터 이씨부부의 고생은 시작됐다. 서울에서 버스로 14시간이나 걸리는 데다 전기 전화 수도도 없던 이 섬. 방풍림까지 조성하며 일군 감귤과수원은 혹독한 기후로 수확에 실패했다. 천신만고 끝에 만든 선착장도 번번이 파도에 부서지고 사육하던 돼지는 가격파동으로 모두 내다버려야 했다. 그 돼지를 싣고 가다가 전복돼 목숨까지 잃을 뻔 했다. 한마디로 ‘밑빠진 독에 물붓기’ 였다. 좌절이 연속되며 잘 나가던 사업마저 휘청거렸다.

그러나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던가. 외도에 사람이 찾아 오기 시작했다. 해금강에 관광객이 몰리면서부터다. 부부는 그때 관광섬 개발에 착안했다. 이때가 80년대 중반. 부부는 외도를 이국적 풍물이 가득한 정원처럼 가꾸기로 하고 아열대수종 중심으로 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현재 섬의 모든 장식품은 모두 부인 최씨가 전국을 돌며 구해 온 것. 팔이 네 번이나 부러질 만큼 험하고 고된 일이었다고 최씨는 회고한다.

외도의 상징이 된 비너스가든 역시 최씨의 ‘작품’. 어느 날 서울 청계천의 헌 책방에서 우연히 구한 외국의 아름다운 정원 사진을 보고 재현한 것으로 지난해 첫 유럽여행 도중 영국에 들렀다 이것이 영국왕궁의 후정이란 것을 알았다고 한다. 부부는 일본의 식물원도 여러차례 견학했고 희귀한 식물만 보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구해다 섬에 심었다.

이렇게 가꾼 외도해상관광농원이 개관한 것은 95년 4월. 그러나 휴식하는 정원을 기대했던 부부의 생각과 달리 섬은 술 마시고 춤을 춰대는 관광객으로 유원지로 전락할 위험에 놓였다. 이씨부부는 술 담배 춤 노래금지를 선포하고 이런 유흥문화와 맞서 싸웠다. 그러기를 5년. 최씨에게 ‘마귀할멈’이라는 별명이 붙기는 했지만 그 덕에 술 담배 춤 노래는 추방됐다.

“세계 각국의 다양한 정원을 가꿔 이국적인 아름다움을 접하도록 할 계획입니다. 자연교육장으로 이용된다면 더없이 기쁘겠지요.”

이씨부부는 아직 개발을 미룬 외도의 부속 섬은 다리로 연결, 숙박시설도 갖출 계획이라면서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으로 가꾸어 가겠다”고 말했다.

summ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