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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준칼럼]기초에 소홀한 정부

입력 | 2000-03-03 19:17:00


두 가지 열풍이 온 나라를 덮고 있다. 주식열풍과 총선열풍이 그것들이다. 어디서나 사람들의 화제는 거기에 쏠려 있다. 주식과 선거에는 공통점이 있다. 모험성이 그것이다. 주식에는 투자자인 ‘나’의 모험이, 선거에는 후보자인 ‘남’의 모험이 개입돼 있다. ‘나’의 모험이건 ‘남’의 모험이건 거기엔 스릴이 따르며 그래서 관객들을 포함해 많은 손님들을 불러 모은다.

▼자국민 보호조차 못해서야▼

그런데 갑자기 항의의 고함소리가 터지고 있다. 우선 재산공개를 통해 일부 고위공직자들과 국회의원들의 주식투자 이익이 많았음이 밝혀진데 대해서이다. 법적으로는 하자가 없다는 것이 당사자들의 해명이지만, 그들의 성공률이 일반투자자들의 6배라는 통계와 특히 재정경제부와 정보통신부 고위관리들의 경우가 적지 않다는 분석이 제시되면서, 고위공직을 활용해 훨씬 유리한 정보를 얻었던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강하게 확산되고 있다.

몇몇 국회의원들의 경우엔 소속 상임위원회와 관련된 기업들의 주식에서 이익을 본 것으로 나타나 구설수에 올랐다. 지금이라도 공직자들의 주식투자에 엄격한 제약을 둬야 한다는 거센 목소리에 정부와 정치권은 빠르게 호응해야 한다. 뭉기적거리면서 비난의 시기를 넘기려고만 한다면 국민의 불신이 더욱 확산되고 시민운동권의 공세가 가열될 전망이다.

총선과 관련해서는 그 동안 수없이 비판과 비난이 제기되어 왔지만, 지난 며칠 사이 새로운 질책이 신문사로 쏟아져 들어온다. 정부여당은 물론 야당들도 오로지 총선에 매달린 탓에 정부의 기본임무수행이 소홀해지고 있다는 불만이다. 필자도 전적으로 공감한다. 최근의 보도만 놓고 보아도 확실히 국정운영에 허점이 여기저기서 드러난다.

우선 중국을 여행하거나 중국에서 활동하는 국민의 안위에 정부와 현지공관이 그렇게까지 둔감할 수 있었던가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자국민의 신변보호야말로 정부의 많은 임무들 가운데서도 초보에 속하는 일이다. 그런데 이미 불상사가 적지 않게 일어나 왔음을 익히 알고 있었을 정부가 어찌 그 동안 아무런 대책없이 지내온 것인지 국민의 거센 항의를 받아도 할말이 없게 됐다. 중국의 공안당국과 미리 공조체제를 세워놓았어야 했을 것이다.

이 대목에서 필자는 정부가 ‘큰 외교’에 치중하다가 해외의 자국민 보호에 소홀했던 것이 아니냐고 따져 묻게 된다. 가령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해 중국의 협조를 받아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외교적 계산이 앞선 나머지, 자국민의 신변안전 문제를 놓고 중국과 마찰을 일으킬 필요가 없다는 식의 소극적 자세를 만들어냈던 것이 아니었느냐는 뜻이다. 피해자들이 목숨을 건 탈출 끝에 중국에서의 공포를 폭로한 때로부터 며칠이 지나서야 비로소 관계기관 회의가 열리고 수사관을 현지로 파견하는 뒷북치는 모습에서 누구나 다 그렇게 느꼈을 것이다. 어디 이 일뿐인가. 광주 재판정에서 죄수들이 교도관을 흉기로 위협한 뒤 탈출한 사건에서도 우리는 정부의 초보적 임무수행이 소루함을 확인한다. 확실히 민생치안은 실종된 상태이다.

이것은 결코 정부의 능력부족 탓이 아니리라. 목표액보다 언제나 훨씬 높게 세금을 거둬들이는 데 잘 나타나듯, 비교정치학에서 말하는 ‘정부의 추출능력’은 얼마나 높은 수준인가. 그런데도 ‘정부의 보호능력’은 왜 이렇게 불철저한가. 그 까닭은 일차적으로 정치지도층의 관심의 경중(輕重)에 있다. 정치지도층이 외교 통일 안보 등에 역점을 두는 ‘상위정치(high politics)’에 몰두하다 보면, 쓰레기치우기, 자국민보호, 교통 등에 역점을 두는 ‘하위정치(low politics)’는 관료의 관심 밖으로 쉽게 밀려난다.

▼'하위정치'부터 철저히 수행을▼

더구나 고위관리들이 재테크에나 몰두하고 정부여당이 총선에만 힘을 쏟는 판에, 자국민보호를 위한 예방조처들이 관료의 관심권에 제대로 들어와 있었겠는가. 주식투자의 열풍과 총선의 열풍 속에서도 정부만큼은 기본적 임무수행에 최선을 다 해야 할 것이다. 국내이건 국외이건 국민이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생활조건을 만들어주는 일, 그것이야말로 정부의 기초적 존재이유이다. 정부를 뜻하는 영어 ‘거번먼트(government)’의 어원이 승객을 화물과 함께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항해하는’ 기술이란 뜻의 그리스어 키베르난(Kybernan)에서 나왔음을 상기해야 한다.

김학준(본사 편집논설고문·인천대총장)ha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