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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유시춘/하동에서 구례까지

입력 | 2000-03-05 21:15:00


경남 하동에서 전남 구례로 가는 국도는 무척이나 아름다운 길이다. 언뜻 스쳐간 몽롱한 꿈결인 양 참하고 고운 길이 어디 이뿐이랴. 팔당댐 너머 양평으로, 경주에서 감포로, 해남에서 완도로, 그리고 동해에서 울진으로 가는 길들은 때로 오래되고 편안한 친구의 말까지 번잡하게 느껴지는 날의 남루한 피곤을 잠재워 준다. 그 길들은 상처받고 신음하는 가슴에 아늑하고 따뜻한 위안으로 다가온다. 작년 초여름 어느 날 해질녘에 예기치 않게 나는 하동에서 구례로 가는 길로 접어들었다.

거기, 남도의 여러 시인이 다투어 노래한 섬진강이 ‘저무는 강변에 쌀밥같은 토끼풀꽃, 숯불같은 자운영꽃 머리에 이어주며’ 유연하게 누워있고 들녘 끝으로 옅은 연무에 살짝 가려진 지리산 자락이 일몰의 빛을 따라 서서히 어두워지고 있었다. 나는 운전을 멈추고 차에서 내렸다. 무엇엔가 홀린 듯이 강변으로 내려서니 수면 위로 짧은 은빛 섬광들이 눈부셨다. 은어떼이었을까. 물길을 거스르는 듯 박차는 듯 요동치는 물고기의 몸짓으로 강물은 조용히 뒤채이고 있었다. 그 황홀경에 젖어 얼마쯤이나 넋을 잃고 앉아 있었을까. 그제서야 멀리 이정표를 보고 나는 전라도 땅에 들어선 것을 알았다. 영남에서 호남으로 이어지는 길에는 행정구역의 경계로 삼을 만한 산도 다리도 하나 없었다. 그저 섬진강을 따라 이어지는 길을 달리다보니 영호남을 부지불식간에 지나온 것이었다.

지리산, 우리 현대사의 대립과 고통의 상징인 그 산이 그날따라 어찌 그리 친근하고 정겨운 모습이던지. 그곳이 주는 정밀감과 안온함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골똘히 생각해보았다. 그랬다. 내가 태어나 자란 경북 내지의 산천과 섬진강변은 별로 다르지 않았다. 그곳은 바로 낙동강 어느 작은 지류에서 재첩과 다슬기를 잡느라 몽당치마 적시며 거꾸로 머리 박던 소녀의 고향이었다.

영남과 호남은 무엇이 다를까. 그 무슨 악연이기에 이토록 지루하고 힘겨운 흠집내기를 지속한다는 말인가. 어느 지식인의 절망처럼 ‘혈연보다 짙고 종교보다 깊은’ 이 지역감정은 우리들 스스로가 걷어내지 않으면 안되는 편견의 덫이다.

편견과 오만과 독선에 스스로 유배된 인간들의 광기가 불러온 20세기의 여러 재앙을 돌아본다. 이제 새로운 세기가 열렸는데 우리는 얼마나 더 큰 비용을 지불해야 지역감정의 주술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기득권을 방어하려는데서 비롯하는 이른바 ‘패권적 지역주의’니, 차별과 소외와 박탈감으로부터 나오는 ‘저항적 지역주의’니 하는 현학적 진단만으로는 우리들이 걸려든 지역감정이라는 ‘악마의 덫’을 걷어 낼 수가 없다.

위대한 반역은 역사의 진전을 재촉했다. 3·1운동, 4·19, 5·18, 6월 민주항쟁이 없이 어찌 오늘의 우리들이 있었으랴. 마산과 부산이 민주성지이듯 광주 또한 짝을 이루어 그러하다. 김주열과 박종철이 낙동강의 젖줄이 길러낸 청년이라면 이한열은 무등산 품에서 성장한 우리들의 아들이다.

나는 호남 친구를 참 좋아한다. 정이 많고 흥에 겨워하며 음식솜씨가 뛰어난 점이 특히 좋다. 그 친구들을 생각하면 우리들 가슴속의 편견과 오만이 부끄럽고 슬퍼진다.

지역감정은 다른 나라에도 있는 현상이기는 하다. 이탈리아 베트남, 미국의 남과 북이나 통일독일의 동과 서도 몸살을 앓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과 다르다. 단일민족으로 언어와 역사를 함께하는 운명공동체라는 축복받은 사실을 상기하자.

서울 북서쪽 자유로의 끝에 닿아 통일 전망대에 서면 철조망 너머로 두 강물이 한 몸을 이루는 정경을 본다. 한강과 임진강은 남과 북의 깊은 고을을 휘돌아 기나긴 장정 끝에 서해가 보이는 하구에서 합수머리를 이룬다.

우리도 이같을 수 없을까. 해 저물녘의 섬진강은 말한다. 영호남은 다만 행정구역의 표기일뿐임을. 모래톱 뽀얀 낙동강을 기억하는 이들에게 꼭 권하고 싶다. 한번쯤 섬진강을 따라가보라고. 그러다 보면 저홀로 깊어지며 맑아지는 강물처럼 우리들의 편견이 정화될지도 모를 일이다. 봄이 오면 맨 먼저 고향 친구들과 함께 구례에서 하동으로 달려 보고 싶다. 상기 겨울 그림자 드리운 섬진강 강심에 여물지 못한 어린 물고기떼가 난만해질 봄을 기다리고 있을까.

유시춘(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