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적으로 작동하던 전자 제품이 폭발해 사고가 났고 제조 회사가 제품의 결함이 아닌 다른 원인 때문에 이 폭발 사고가 났다는 것을 입증하지 못한다면 제조 회사에 손해 배상 책임이 있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민사3부(주심 이돈희·李敦熙대법관)는 4일 보험 가입자에게 TV폭발 사고로 인한 화재보험금을 지급한 D화재보험이 TV 제조 회사인 S전자를 상대로 낸 구상금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이같이 판시해 원고 승소 판결을 내린 원심을 확정했다.
이번 판결은 제조물로 인한 피해가 발생했을 때 소비자가 제조 회사의 고의나 과실이 있었음을 입증해야 했던 과거 판례에 비해 소비자의 ‘입증 책임’을 크게 완화한 것이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사고가 제조업자의 배타적 지배 하에 있는 전문 기술적인 영역에서 발생한 것이며 누구의 과실 없이는 통상 그 같은 사고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사정을 소비자가 입증하고 제조사의 ‘반증’이 없다면 제품 자체에 결함이 있었다고 추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폭발한 TV가 비록 내구 연한인 5년보다 1년 더 사용된 것은 사실이나 내구연한은 제품이 본래의 용도에 따라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간을 의미하는 것이며 사고가 났을 때 손해를 배상해야 하는 기간으로는 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D화재보험은 김모씨 가족이 96년 16인치 TV로 방송을 시청하던 중 브라운관내 전자총 부분의 누전으로 추정되는 폭발 사고가 일어나 건물 2층이 타는 사고가 발생하자 5600여만원을 보험금으로 지급한 뒤 S전자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한편 국회는 99년 12월 부동산을 제외한 공산품의 자체 결함으로 피해가 발생하면 소비자가 제조 회사의 고의나 과실이 있었음을 입증하지 못하더라도 배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한 ‘결함제조물책임법’을 제정해 2002년 7월부터 시행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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