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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삶의 빅딜]LG텔레콤 차장 이준섭씨

입력 | 2000-03-05 21:15:00


“매스콤에서 절약하지 않으면 큰일난다고 하도 엄포를 놔서 바꿨죠.”

LG텔레콤 이준섭차장(40·경기 성남시 분당구 수내동)은 1998년 6월, ‘암울했던’ 국제통화기금(IMF)관리체제 시기에 선루프 에어백 등 옵션이란 옵션은 죄다 달고 폼나게 타던 프린스(배기량 2000㏄)를 400만원에 처분했다. 그리고 바꾼 차가 경차 마티즈.

연비 주차료 톨게이트비 등 경제적인 면에서 도움이 될 거라 기대했지만 바꾸고 나니 온갖 해프닝은 다른 곳에서 벌어졌다.

먼저 도로에서. 좌회전하려고 앞차를 따라 가다 신호를 위반했다. 교통경찰은 “앞차에 가려 신호가 안보이셨죠? 다음부턴 조심하세요”라며 그냥 보내줬다. 지난 3년 간 세 번이나. 심지어 음주단속 중에도 한번 힐끔보고는 “그냥 가라”는 일이 두 번에 한번 꼴.

“아마 ‘경차 타고 다니는데 네가 무슨 돈이 있겠니?’ 하는 것 같아요.”(이씨)

다음은 인간관계. 경차로 바꿨다니까 부모님은 “절약하는 게 좋지…”하면서도 곧 이어 “그런데 꼭 그렇게까지 해야하니?”라며 안타까워했다. 그러나 직장동료나 후배들은 “대기업 차장이 왜?”하듯 의아한 눈길을 보냈다. 그가 분당에 35평 아파트와 상장될 경우 10억원대가치의 우리사주를 가지고 있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

“돈 많은 티를 내지 않으려고 저러는 거야.”(동료)

“맞아요. 있는대로 보여주다가는 세무조사 걸리지 않겠어요?”(후배)

게다가 경차는 난처한 상황을 만들기도 했다. 마티즈로 바꾼 첫 겨울, 스키장에 가는 데 옆차에서 자꾸 쳐다봤다. 나중에 내려서 보니 마티즈 위 스키캐리어에 온가족(4명)의 스키가 달린 모습이 작은 비행기같았다.

골프장에선 더 민망하다. 골프장에 들어서면 직원이 달려와 트렁크에서 골프채를 옮겨주기 마련. 그러나 같은 직원인줄 알고 아무도 오지 않아 이씨가 직접 내려 구겨진 골프백을 꺼내야만 했다.

두 딸 정민(12)과 정수(10)도 처음엔 “다른 아빠 차는 큰데 아빠 차는 왜 쬐끔해?”하며 싫어했다. 그러나 최근 차 뒤에 커다란 강아지 스티커를 붙인 뒤엔 강아지처럼 귀여워한다(사실 마티즈란 이탈리아산 털이 긴 강아지 이름이다).

“마티즈, 좋은 찹니다. 백마타던 왕자가 강아지 탄다고만 생각하면요.”(이씨)

laros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