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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곳에선]하선식/대만의힘은 튼튼한 中企

입력 | 2000-03-07 20:06:00


97년 한국 태국 등 아시아 국가들이 외환위기를 맞아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에 들어갔을 때 대만은 상대적으로 별다른 타격을 받지 않아 주변 국가들의 부러움을 산 적이 있다. 신(新)대만달러가 절하돼 무역 및 경제성장이 다소 둔화되기는 했지만 곧 안정 기조를 되찾아 경제 발전을 계속하고 있다.

이처럼 대만이 위기를 슬기롭게 넘길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대만 기업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건실한 중소기업들이 밑거름이 됐다. 대만은 국토의 크기나 인구에 비해 중소기업이 많은 나라다. 인구 2200만명에 국토 면적은 경상남북도를 합친 정도에 불과하다. 대만에는 107만여개의 기업체가 있는데 중소기업이 97.6%를 차지한다.

이곳에서 사업을 하면서 대만인들의 몸에 밴 절약의식과 독특한 상거래 방식에 놀랄 때가 많다. 대만 상인들은 투자 가치를 따져 단기간에 투자 성과를 볼 수 있는 사업에는 과감히 뛰어들지만 5∼10년이 넘는 장기 투자는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 이것이 바로 중소기업의 특성이 아닌가 싶다.

중소기업에 대한 은행들의 적극적인 협조와 지원은 부럽기 짝이 없다. 한국의 은행들은 대기업에는 대출을 잘 해주면서도 중소기업에는 인색하다. 대만 은행들은 자금대출 등에 관한 각종 정보를 적극적으로 중소기업에 제공하고 애로사항을 묻는다. 한국처럼 심사를 질질 끌고 복잡한 서류를 요구하지도 않는다. 자격만 있으면 대출이 신속하게 이뤄져 기업은 제 때 돈을 빌려 쓸 수 있다.

이런 배경에는 대만의 든든한 외환보유고가 뒷받침이 됐기에 가능했다. 외화가 많다는 것은 기업들이 열심히 물건을 수출해 돈을 벌어들였다는 증거다. 대만의 외환보유고는 900억 달러를 넘어선 지 오래이며 나라의 크기나 인구로 감안하면 세계 1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소기업이 번창한 데는 중국인의 민족성과도 무관하지 않다. 중국인들은 용의 꼬리보다는 뱀의 머리가 되길 원하는 민족이라고 볼 수 있다. 종업원으로 일하기 보다 모두 사장이 되고 싶어한다. 중소기업이 국민 20명당 1개인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외국인으로서 대만에서 중소기업을 하며 한국 제품을 100% 수입해 팔고 있지만 외국인 기업이라고 차별하지 않는다. 기업 내용만 건실하면 언제든 대출을 받을 수 있다. 대만 은행들의 자세를 보면서 한국의 은행들도 중소기업에 대한 인식과 태도를 바꿨으면 하는 바람이다.

95년부터 H제과의 ‘에이스 크래커’를 수입 판매해 대만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이제 대만 사람 10명중 8, 9명은 에이스 크래커를 먹어보았다고 할 정도로 이들의 생활 속에 깊숙이 파고들었다. 한해 수출량이 단일 제품으로 1000만달러를 넘을 정도여서 일본의 제과업계도 질투어린 시선으로 쳐다본다. 성공 비결은 대만인들의 구미에 맞는 제품을 만든 결과다.

얼마 전 대만정부의 한 장관을 만났더니 한국∼대만 정기 항공노선의 복항(復航)지연과 농산물 수출입이 쿼터에 묶여 있는 것을 걱정하며 교류 활성화를 강조했다. 양국 경제에 모두 도움이 되는 만큼 한국이 적극성을 보여주길 희망했다. 돈을 벌어야 하는 사업가 입장에서 하루빨리 그렇게 되길 바랄 뿐이다.

대만의 국민소득은 거의 중소기업이 기여를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게 벌어들인 돈을 슬기롭게 쓴다. 적처럼 느꼈던 사람도 사업을 위해서는 좋은 친구로 변하고 이익을 위해서는 친한 친구도 버리는 곳이 대만이다. 모두 비즈니스를 위해 살고 있는 사람들 같다.

근무시간에 개인 일을 보거나 잡담하며 TV를 보는 일이 없다. 1인당 국민소득이 1만5000달러를 넘어섰지만 씀씀이는 지독할 정도로 알뜰하다. 경기가 조금 풀렸다고 흥청대는 한국인들을 어떻게 볼까.

아직 단교상태이지만 민간부문 교류는 계속 확대해야 한다. 한국인들이 중국에 대해 아는 것만큼 대만인들은 한국이나 한국문화를 알지 못한다. 그래서 더욱 민간 교류가 활성화돼야 한다.

하선식(대만 성우실업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