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지휘자 정명훈이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니 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에 임명되면서 ‘생소하게’ 들리는 이 악단에 관심의 눈길이 쏠리고 있다. 정씨는 당초 프랑스 국립 오케스트라의 상임지휘자 자리를 놓고 핀란드 출신 유카 페카 사라스테와 경합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왜 그는 덜 알려진 악단으로 발걸음을 돌렸을까.
파리의 ‘양대 관현악단’으로 흔히 파리 관현악단과 프랑스 국립 관현악단을 꼽는다. 실력이나 지명도 면에서 파리 관현악단이 한 수 위다. 여기에 정씨가 1994년 퇴임할 때까지 정밀하게 조련한 바스티유 오페라 관현악단이 끼어 ‘3대’ 관현악단으로 불린다.
정씨가 지휘대를 맡게 된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니 오케스트라는 프랑스 국립 관현악단의 동생뻘. 1934년 창단된 프랑스 국립 관현악단은 2차대전 이후 ‘라디오 프랑스’ 방송의 산하기관이 됐다. 76년 라디오 프랑스는 ‘프랑스 국립 고음악 관현악단’ 등의 작은 악단들을 합쳐 ‘프랑스 라디오 신(新) 필하모니’를 창설했다. 국립 관현악단은 전통적 레퍼토리에 주력하고, ‘신 필하모니’는 현대음악과 제3세계의 창작곡을 위주로 활동한다는 전략이었다. 89년 이 악단은 ‘라디오 프랑스 관현악단’으로 개칭됐다.
정씨가 라디오 프랑스 관현악단 행을 결정한 데는 두 악단이 동일한 집행부를 갖고 있다는 점이 한 몫을 했다. ‘국립’은 2001년 현 상임지휘자 샤를르 뒤트와가 임기종료를 맞고, ‘라디오’는 전 상임지휘자 마렉 야노프스키가 올 1월로 임기를 마쳤다. 이 때문에 라디오 프랑스측과 정씨측은 애초부터 두 악단 중 하나를 놓고 협상해 왔다.
당초에는 ‘국립’행이 유력했다. 지난달 정명훈이 이 악단을 이끌고 일본 순회연주를 가질 정도로 정씨와 ‘국립’은 가까웠던 상태. 그러나 단원 일부가 정씨의 연습 스타일에 반대를 표명했고, 결국 ‘라디오’쪽으로 협상이 진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양측은 결과에 만족을 표시하고 있다. 라디오 프랑스 관현악단으로서는 정씨의 취임이 세계적 지명도를 획득하는 계기로 작용할 것을 내심 기대하고 있다. 정씨는 세계 최고의 음반 레이블인 도이체 그라모폰(DG)에서 새 레퍼토리를 속속 녹음하고 있다. 그가 내년 로마 산타 체칠리아 오케스트라와 재계약을 하지 않을 경우, 라디오 프랑스 관현악단은 정씨의 주력악단이자 대음반사 DG의 주력악단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정씨로서는 뛰어난 합주력을 갖고 있으면서도 지명도가 낮았던 악단을 ‘키웠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 ‘라디오 프랑스’라는 기구에 함께 속한 프랑스 국립 오케스트라와도 밀접한 관계를 계속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정씨는 최근 취임을 맞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라디오 프랑스 관현악단을 세계 최고 앙상블 중 하나로 키워놓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