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원유가격이 배럴당 34달러를 넘어섰다. 불과 1년 사이에 3배 이상 뛰었다. 국제 유가가 30달러를 넘어서기는 91년 걸프전 이후 9년만으로 이같은 고유가 행진이 계속 이어질 경우 3차 오일파동이 오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마저 높아지고 있다. 세계경제가 아연 긴장에 휩싸이고 국내 산업계에도 초비상이 걸렸다.
직접적인 타격을 입을 정유업계는 물론이고 에너지 다소비업종인 석유화학과 항공 철강 시멘트업계도 큰 폭의 원가상승이 불가피해졌다. 그것만이 아니다. 안정기조가 흔들리고 있는 무역수지와 물가가 걱정이고 전체 경제운용에도 막대한 차질이 예상된다.
물론 지금과 같은 고유가 추세가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지 정확히 예측하기는 어렵다. 고유가 지속이 원유 소비를 위축시켜 결국 산유국에 부메랑으로 돌아갈 것이고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결속력에도 한계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수급불균형이 단시일에 해소되기는 어렵기 때문에 당분간 고유가체제는 지속될 것이다. 국내수요의 80%를 차지하는 중동산 두바이유도 25달러 내외의 고유가 상황이 이어지리라는 전망이다.
그런데도 정부의 인식과 대책은 안이하다. 지난 1년간 국제 유가동향에 대한 예측이 번번이 빗나간 것도 그렇거니와 정부대책 또한 갈팡질팡이다. 정부는 8일 긴급유가대책회의를 갖고 유가상승분을 물가에 반영하겠다는 방침을 밝혔으나 몇시간도 안돼 이를 번복했다. 그 대신 할당관세 인하, 비축유 방출, 석유부담금 인하 등을 통해 국내유가를 현 수준으로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천명했다.
정부의 이같은 정책혼선이 어디에서 비롯됐는지 모르지만 만약 4월총선때까지 국내유가를 동결하라는 정치권의 압력 때문이었다면 문제는 심각하다. 국제 고유가체제가 지속될 경우 탄력세율 적용 등으로는 국내유가 유지에 한계가 있다. 가격억제를 위한 단기대책은 한시적으로만 유효하다. 국내 소비자유가는 이제 시장에 맡겨야 하며 유가정책은 수요관리정책으로 바뀌어야 한다. 정부의 국내유가 현 수준 유지가 지나치게 낙관적이며 에너지정책 자체를 왜곡할 수 있다는 비판이 일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더욱 한심한 것은 정부가 그동안 무엇을 했느냐 하는 점이다. 유가가 급등세를 보이면 고작 내놓는 대책이란 것이 비축물량 방출, 최고가격제 실시 등으로 소비자가격을 묶어두려는 잘못된 정책에 줄곧 매달려 왔다. 소비절약도 급할 때 외쳐대는 구호뿐이었다. 우리는 기름 한방울 나지 않는 나라다. 유가동향에 관계없이 산업구조를 에너지절약형으로 바꾸고 가격정책을 통해 유류소비의 합리화와 절약시책을 일관되게 이끌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