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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사람]안정효/"내가 쓴영어 절대 쓰지마시오"

입력 | 2000-03-10 19:21:00


소설가이자 번역문학가인 안정효씨(60)의 새책 ‘가짜영어 사전’(현암사)을 읽고나면 입을 떼기가 겁난다. 한국에선 이제 삼척동자도 유창하게 구사하는 ‘핸드폰’조차 영어가 아니라니…. 외국사람 앞에서 핸드폰을 설명하려고 손짓발짓 안 하려면 ‘셀폰(Cell Phone)’이라고 해야 한다고?

책을 두고 마음이 불편하기는 저자도 마찬가지다.

“엉터리 영어들을 많이 쓰길래 처음엔 웃자고 시작한 일인데 하다보니 나도 아주 심각해져버렸어요.”

‘가든’부터 ‘힙합’까지, 3년 동안 수집한 ‘이상한 영어’를 책으로 묶으니 896쪽 분량. 그나마도 책이 너무 두꺼워져 상당 분량을 버린 결과다. 처음엔 100쪽이나 넘길 수 있을까 생각했다. 책 두께만큼 영어로 인한 한국어 공해가 심각하다는 것을 확인한 셈이다.

“이런 영어를 버젓이 해외에 나가서도 쓰니 문제지요. 심지어 대통령이 외국인 대상 연설에서 벤처기업을 ‘Venture Enterprise’라는 해괴한 조어로 표현하는데는 위기감마저 느꼈습니다.”

대안은 정확한 영어를 구사하도록 영어공부를 더 열심히 하는 것인가? 대학3학년때 벌써 자신의 소설을 영어로 번역했고 지금은 대학(이화여대 통역대학원)에서 문학번역을 가르치는 안씨가 이 질문에 강하게 고개를 내저었다. 영어 배우는 데 들이는 공력만큼 있는 우리말을 잘 공부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랜 세월 번역을 했어도 한국어로 마땅히 옮길 말이 없다고 생각했던 건 ‘Hotel’을 포함해 3,4개밖에 안됩니다. 영어로 알릴만한 우리 것을 잘 만들어 세계에 알리는 것이 국제화지 어떻게 영어만 잘 하는게 국제화입니까? ‘영어조기교육’이다 ‘영어공용화’다, 아이들도 공무원도 기술자도 영어 배우느라 시간을 다 쓰면 자기 일의 전문성은 언제 높여 나가고 제 나라말은 언제 제대로 배우겠습니까.”

저자의 이런 견해에도 불구하고 ‘가짜영어 사전’은 잘못된 영어구사를 바로잡아주는 참고서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일본식 영어로 우리나라에서도 통용되고 있는 ‘영화매니아’‘게임매니아’등도 ‘시네마버프(Cinema Buff)’ ‘게임버그(Game Bug)’가 맞는 표현임을 알게된다.

ry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