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의 날들' 나딘 고디머 지음, 왕은철 옮김/책세상 펴냄/전2권▼
91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나딘 고디머(남아공)의 첫 장편소설 ‘거짓의 날들’이 번역 소개됐다.
최근까지 우리말로 소개된 고디머의 소설은 ‘보호주의자’등 후기 작품이 대부분. 넬슨 만델라가 27년간의 감옥생활 끝에 석방되면서 ‘나딘을 만나야 합니다’라고 말했을 만큼, 고디머의 후기 소설은 남아공 격동의 역사 속에서 백인들의 양심을 두드리는 종소리로 여겨졌다.
그러나 정작 남아프리카 내에서 인기를 끄는 그의 작품은 대부분 초기작으로 알려졌다. 정치적 색채와 변혁에의 갈증으로 가득찬 후기작에 비해 그의 초기 작품에는 인간 내면의 섬세한 울림과 서정성, 풍요로운 시정이 배어나오기 때문.
‘거짓의 날들’은 작가가 ‘나의 유일한 자전적 소설’이라고 밝히는 작품이다. 철모르는 어린 소녀였던 2차대전의 시기를 거쳐, 성장하면서 인종갈등과 사회의 모순, 변혁에의 의지에 눈떠가는 모습을 담고 있다.
주인공 헬렌 쇼는 광산회사 간부인 백인의 딸. 광산에서 낙석사고가 생겨 사망자가 생겨도 흑인이면 ‘물건’으로 취급되는 광경을 일상으로 겪으며 자란다.
어머니 친구의 아들 루디, 유태인 요엘 등과 사귀면서 점차 흑백차별이 갖는 불합리성에 눈을 뜨게 되고, 사회변혁에 참여하려 하지만 진실에 눈을 뜰수록 그는 가족과 백인공동체로부터 소외되어간다.
작품 마지막 부분에서 헬렌은 결국 남아프리카를 떠나지만, 돌아올 것을 예감한다. 돌아오더라도 전과 같은 방식의 삶은 아닐 것이다. “나는 계속 올 것이지만, 내가 오는 방식은 결코 ‘되돌아오는’게 아닐 것이다”라고 그는 되뇌인다. 스트라이크와 흑인폭동 등 이나라의 순탄치 않은 현대사는 작품의 핵이라기 보다는 배경에 가깝다. 대신
주인공이 사랑과 성과 자의식에 눈떠가는 과정이 작품의 기둥을 섬세하게 색칠하며 독자의 눈길을 흡인한다. 왕은철 옮김 책세상 펴냄 전2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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