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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시평]정갑영/대학을 벤처의 産室로

입력 | 2000-03-12 19:49:00


▼디지털 전문인력 양성 절실▼

지식기반 사회에서는 양극화 현상이 많이 나타난다. 기업가치는 물론이고 계층간 소득도, 세대간의 문화적 격차도 더욱 심화된다. 한쪽은 첨단지식과 정보를 제대로 활용하고 다른 쪽은 전통적인 양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름하여 디지털 디바이드(digital divide), 즉 디지털 문화에서 파생되는 양극화 현상이라고 부른다. 이것은 이미 우리 경제에도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다. 코스닥의 발빠른 e기업과 거래소의 무거운 우량기업, 네트워크에 익숙한 네티즌과 컴맹인 ‘쉰세대’의 간격이 더 벌어지고 있다. 디지털 경제의 주도계층과 소외계층 사이에 양극화 현상이 빠른 속도로 파급되고 있는 것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세계적인 양극화 현상이다. 국가간 빈부격차가 더욱 확대돼 선진국을 추격할 수 있는 가능성이 갈수록 더 멀어지고 있다. 정보 인프라는 물론이고 기술과 시스템의 변화도 그렇다. 9년째 호황을 누리는 미국과 끝없는 불황에서 탈출하지 못하는 일본의 사례는 디지털 양극화의 상징과 같다. 슈퍼스타만이 살아남는 글로벌 경쟁에서 주변부 국가의 낙후는 더 빨리, 더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양극화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양극화의 처연한 운명에서 탈출할 수 있는 그 ‘무엇’을 만들어내야만 한다. 가장 중요한 핵심은 역시 지식기반 경제를 주도할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하는 일이다. 즉 첨단기술과 벤처정신, 디지털 혁명을 선도할 수 있는 전문인력의 배출이 가장 절실하다. 첨단산업의 경쟁력은 자본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지식과 정보, 기술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대학이 바로 첨단산업의 기반이고 지식혁명의 산실이다. 양극화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의 원천도 바로 대학에서 만들어진다. 대학교육의 경쟁력 격차가 바로 미래의 양극화 수준을 알리는 선행지표다.

우리 수준은 과연 어떤가. 국제기구에서는 한국의 대학교육은 조사대상 47개국 중 최하위라고 발표한 바 있다. 떠들썩했던 BK21 사업 예산 2000억원은 미국의 명문 사립대학 1년 예산의 10분의 1에 불과한 수준이다. 하버드대는 작년에 5억달러의 기부금을 모았고 다른 대학들도 장기호황으로 기부금이 넘쳐난다. 기금 순위 50위권 대학들도 8억달러 이상이나 된다. 여기에다 엄청난 연구비까지 포함하면 한마디로 우리 대학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물론 대학교육이 기금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열악한 첨단산업의 기반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고 대학이 취약한 정부재정에 더 매달릴 수도 없는 형편이다. 따라서 민간부문과 협력해 대학을 살리도록 해야 한다. 선진화된 모델로 대학의 연구와 기업의 벤처를 동시에 추진할 수 있는 새로운 협력관계를 도입해야 한다. 시혜적 기부를 받는 것이 아니라, 대학이 기업의 전략적 파트너로서 연구개발(R&D) 투자의 대상이 되고, 투자한 기업에 연구결과의 우선적 활용권을 부여하는 것이다. 미국의 철강왕 카네기와 은행가 멜런이 합심해 세운 명문 카네기멜런대학도 이렇게 만들어졌다.

▼기업들 전진기지로 활용해야▼

이런 관점에서 최근 포항제철이 포항공대의 생명과학 분야에 1400억원을 투자하겠다는 계획은 신선한 충격이 아닐 수 없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뛰어넘어 대학의 실험실을 미래산업의 진출을 위한 전진기지로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기업은 대학에서 우수한 인력을 확보하며 성공적인 벤처의 발굴을 시도할 수 있고, 동시에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하는 역할을 한다. 이런 전략적 협력은 벤처에 직접 투자하는 것보다 위험부담도 줄일 수 있고 대학교육에 투자되는 것이므로 실패에 따른 사회적 비용도 크게 감소시킬 수 있다.

이러한 협력모형이 대학과 기업을 같이 살리면서 디지털 양극화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다. 동시에 기부문화도 확산시키고 대학을 완전히 자율화해 스스로 경쟁력을 갖도록 해야 한다. 대학을 살리지 않고서는 지식기반 경제의 우위를 차지할 수 없다.

정갑영(연세대 교수·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