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병원 산부인과 이효표교수(59)는 말수가 적고 무뚝뚝하다. 32년 전 아내 권성숙씨(53)와 첫 선을 볼 때 그가 한 말은 “예”“아니요”가 전부. 그래도 병원에서 인기가 많다. 무심한 듯 툭툭 던지는 유머 덕분이다.
한달 전 산부인과 수술실. 칼 가위 실 등 수술 도구들이 허공에서 일사분란하게 왔다갔다 할때. ‘쨍그랑∼’. 가득이나 긴장된 분위기는 순간 경색됐다. 이교수의 손을 떠난 칼을 레지던트가 놓쳐 떨어뜨린 것.
“이 친구, 자해공갈단 출신인가. 칼에 팔뚝은 왜 갖다대는거야. 그래, 나한테는 얼마나 받을 생각인가.”
◇툭툭 던지는 유머로 인기◇
이교수의 농담에 긴장된 분위기는 일순간 풀어졌고 칼을 제대로 받지 못해 당황해하던 레지던트의 벌건 얼굴도 가라앉았다.
▼해피한 별명▼
레지던트 시절 별명은 ‘해피(Happy)’. 발음하기 어려운 그의 이름 대신 같은 과 친구들이 즐겨 불렀다. 당시에는 강아지 이름처럼 들려 싫었지만 이젠 삶의 철학이 됐다.
행복한 삶을 위한 필수조건은 즐거움. 못하는 유머지만 환자와 후배 간호사 등 병원 식구들을 웃기려고 애쓰는 것도 이 때문이다.
환자는 ‘또하나의 가족’. 그의 눈에는 환자 한 명 한 명이 어머니나 딸로 보인다. 특히 완치가 불가능한 말기암 환자를 대할 때는 말 한마디도 애정을 담아 얘기한다. 그리고 고통없이 생을 마감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찾는다. 그래서 그는 환자들 사이에 ‘따뜻한 사람’으로 통한다.
▼첫 성관계 이후▼
국내 여성암 발생율 1위는 자궁경부암. 매년 7000여명의 환자가 발생한다. 다음은 위암 유방암 대장암 간암의 순. 미국은 유방암 폐암 대장암 자궁내막암 난소암의 순으로 많다. 최근 식생활의 서구화에 따라 국내에서도 자궁내막암이 급증하는 추세. 1980년대만 해도 찾아보기 힘들었던 것이 매년 300여명씩 발생한다.
◇성생활 문란하면 발병률 높아◇
“일찍 발견하면 100% 치료가 가능한 것이 부인암입니다. 첫 성관계 이후 매년 자궁세포를 검사받는 것이 최선의 방법입니다.”
30여년 부인암에만 전념해온 이교수가 추천하는 예방법이다. 그의 아내도 결혼 이후 지금까지 매년 정기검진을 거르지 않고 있다. 그 덕에 7년전 자궁에 생긴 혹을 조기발견, 수술을 받았다.
자녀는 딸만 셋. 20대 미혼인 이들에게 ‘첫 성경험 연령이 낮고 성생활이 문란한 여성에게 자궁암 발병율이 높다’는 자신의 연구결과를 알려줬다. “월경과다나 심한 생리통, 그리고 비월경기의 불규칙한 출혈 증세는 자궁에 문제가 있다는 전조이므로 반드시 병원을 찾아야 한다”는 것도 아내를 통해 전했다.
그의 사전에 외도는 없다. 아내를 부인암 환자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다. 자궁경부암의 상당수가 남편의 ‘부적절한 관계’로 발생하기 때문. 무분별한 성적 접촉으로 전파되는 ‘인유두종 바이러스’(Human Papilloma Virus·HPV)가 자궁경부에 침투할 경우 세포분열 과정에서 정상적인 세포가 암세포로 돌연변이할 수 있다.
◇자궁경부암 병원체 규명◇
이교수는 학계에서 부인암, 특히 자궁경부암 진단과 치료의 권위자. 수술이 불가능한 조기 부인암 환자를 동맥 혈관에 항암제를 주입하는 방법으로 치료율을 높였다. 자궁경부암의 원인으로 지목된 HPV라는 병원체를 발견, 발병 매카니즘을 밝히기도 했다.
자궁내막증 등 각종 부인과 종양 치료에 복강경 수술을 도입해 불필요하게 배를 째는 일을 줄인 것도 그의 업적. 부인암에 대한 치료와 연구공로를 인정받아 1998년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에서 주관하는 과학기술 우수논문상을 받았다.
▼소식 소음▼
특별한 건강법은 없다. 매일 오전 5시반에 일어나 5분 정도 맨손체조하고 주말에 동네 뒷산을 산책하거나 골프연습장에서 1시간 골프채를 휘두르는 것이 전부.
다만 적게 먹고 적게 마신다. 기름기 많은 고기는 가급적 피하고 풋고추 상추 등 채소를 많이 먹으려고 애쓴다. 사과 배 등 과일은 틈나는 대로 챙겨먹는다. 술은 상대방의 기분이 상하지 않을 정도 마시지만 과음은 절대 안한다. 담배는 군의관시절 끊었다. 혈압 콜레스테롤 등은 모두 정상.
“건강이요? 모든 것을 상식선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면 지킬 수 있습니다. 몸을 무리하지 않고 적당히 운동하며 삶에 최선을 다하면 큰 병은 안생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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