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
40대 초반의 남자입니다. 아내 문제를 상의하려고 합니다. 아내는 약간의 우울증과 강박증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나아지는 기미가 없고 아내는 이 병원 저 병원 다니면서 불평만 늘어놓습니다. 오히려 지금의 상태가 계속되기를 바라는 것은 아닌지, 병으로 저를 괴롭히려고 하는 것은 아닌지 별별 생각이 다 듭니다. 그럴 수도 있는지요.
(서울 중구 신당동에서)
▼답 ▼
건강염려증 환자가 병원을 순례하듯이 정신과에도 비슷한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그들은 면담 초기에는 비교적 성실한 자세를 보입니다.
그러나 의사로부터 자신의 문제가 무엇이며 그것을 바로잡기 위해 치료에 필요한 이야기를 듣고 나면 갑자기 태도가 돌변해 아예 병원에 오지 않거나 다른 의사를 찾아가 처음부터 똑같은 일을 되풀이하곤 합니다.
늘 그럴 듯한 핑계를 대지만 사실은 치료에 진전이 있어서 자기 자신이 바뀌는 것에 대한 불안감과 두려움이 너무 큰 것이 그 진짜 이유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 문제를 고치고 싶다고 말하지만 꼭 다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문제가 있는 동안에는 인생의 다른 모든 골치아픈 일들도 다 그 속에 투사함으로써 병적인 자기 합리화가 가능합니다.
그런 자기 합리화야말로 인생에서 짊어져야 할 책임을 회피하거나 애매모호하게 만드는 강력한 구실이 되어줍니다. 다시 말해 자기의 병이나 문제 속으로 도피함으로써 현실과 유리되고 싶다는 무의식적인 욕구가 너무 강해 치료 자체를 방해하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 환자의 가족이나 의사는 인내심과 애정을 가지고 환자가 자신을 좀더 개방하고 스스로에게 기회를 줄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합니다. 섣부른 비난이나 분석은 상태를 더욱 악화시킬 뿐이니 자제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양창순(양창순신경정신과 원장) www.mind-op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