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1년 3월21일 정오. 서울 광화문 네거리. ‘애앵∼’ 하는 사이렌 소리가 울려 퍼지자 머리띠를 질끈 동여맨 14명의 건각들이 대로변에 빽빽이 늘어선 시민의 박수를 받으며 출발선을 힘차게 박차고 나갔다. 70년 역사의 동아마라톤이 시작되는 바로 그 순간이었다.
첫 대회는 광화문에서 영등포 간을 왕복하는 14마일(약 22.530㎞) 구간에서 열렸고 첫 우승자는 양정고보에 재학 중이던 김은배로 기록은 1시간22분05초.
2회 대회 때는 신의주에서 온 20세의 청년 손기정이 2위를 차지하면서 혜성처럼 등장했다. 3회 대회 때 신기록을 세우며 우승한 손기정은 동아마라톤에서 쌓은 실력을 바탕으로 2년 후인 1936년 베를린올림픽에서 월계관을 쓰는 영광을 누렸다.
1940년 제11회 대회를 치른 뒤에는 일제의 언론탄압이 최악의 상태로 치달으면서 동아마라톤도 암흑기에 접어들었다.
동아마라톤이 다시 부활된 것은 1954년. 광복과 6·25전쟁의 격동 속에서 질주를 멈췄던 동아마라톤은 54년 제25회 대회로 부활돼 빛나는 전통을 다시 잇게 된다.
1964년 제35회 대회부터 광화문을 출발점으로 경인가도를 달리는 42.195㎞의 풀코스를 채택해 명실상부한 국제대회로서의 토대를 쌓았다. 풀코스의 첫 우승자는 이창훈. 기록은 2시간27분13초8.
제37회(1966년) 대회에서는 김복래가 2시간19분07초로 우승해 처음으로 20분대의 벽을 깼고 41회와 43회, 44회 대회에서 우승한 김차환은 연거푸 한국기록을 세우며 우승해 ‘기록제조기’로 불렸다.
53회 대회(1982년)때는 21개국에서 40명의 외국선수를 초청해 명실상부한 국제대회로 발돋움했으며 55회 대회 때는 이홍렬이 마의 15분벽을 깨고 2시간14분59초의 한국최고기록으로 우승하는 쾌거를 이뤘다.
1991년 제62회 레이스에서 3위에 오르며 새별로 등장한 황영조는 이듬해 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 세계를 제패했다.
또 1992년(63회) 춘천, 1993년(64회)부터 1999년(70회)까지 경주에서 개최된 동아마라톤은 1995년(66회) 챔피언인 이봉주가 현역 최고의 스타로 탄생한 무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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