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제 곧) 죽을지도 모릅니다.”
지인들에게 보낸 연하장에 그렇게 적었다.
그러나 보름이 채 가기 전, 작가는 일간지에 에세이를 기고하기 시작한다. 서양식 유리문 안쪽의 서재에서, 삶 곁에 살짝 다가와 앉은 죽음을, 이제 작별을 고하려 하는 세상살이의 쓸쓸함을, 아스라이 되살아나는 유년의 추억과 더불어 쓴다.
일본의 ‘국민작가’로 불리는 나쓰메 소오세키(夏目漱石·1867∼1916)의 에세이 ‘유리문 안에서’가 번역 출간됐다. 위궤양에 따른 내출혈로 삶을 마감하기 전해인 49세때에 쓴 것이다.
책의 줄기를 수놓고 있는 것은 ‘고양이가 물린 상처를 햇볕에 드러낸 채 졸고 있다. 고무풍선을 띄우며 떠돌던 아이들은 활동사진을 보러 가버렸다. 나는 팔베개를 하고 툇마루에서 한숨 잘 작정이다’라는 평온한 일상이지만, 언뜻 언뜻 다가오는 ‘마지막’의 예감이 점점이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운다.
“작년 가을에도 몇 사람의 장례식에 갔다. 그 중에는 사토군도 들어 있다. 나는 그가 어느 연회석상에서 은잔을 들고 와 술을 권하던 일을 떠올렸다. …이 건강하던 사람의 장례식에 다녀와서 이따금 생각해 보면, 내 자신 살아 있는 게 부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운명이 일부러 나를 우롱하는 게 아닐까.”
소오세키는 풍자적 연작장편 ‘나는 고양이다’로 널리 사랑받는 작가. 깊은 윤리의식과 정밀한 심리 묘사를 이용, 인간의 자의식을 탐구한 일본 근대문학의 1인자로 일본 1천엔권 지폐에 그의 얼굴이 인쇄돼 있다. 일본에 거주중인 번역자는 후기에서 “집주인에게 소오세키를 전공한다고 밝히자 주인은 공짜로 집을 빌려주었다”는 일화를 털어놓기도 했다. 김정숙 옮김. 민음사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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