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바늘을 2년 전으로 돌려 IMF의 급전지원으로 겨우 부도위기를 넘긴 ‘한국주식회사’의 모습을 회상해 보자. 주제넘게 높았던 원화 값이 현실화됐고 골칫거리였던 정리해고제가 단번에 국회를 통과했다. 은행불사 신화가 깨져 금융권은 대대적인 통폐합을 경험했고 ‘매판(買辦)’으로 치부되던 합작기업들은 달러유입 창구로 환영을 받았다. 우리는 사회 각 분야에서 명분보다 ‘효율성 중시’의 시대로 넘어왔다고 자평했다.
그러나 총선을 앞두고 최근 분출되는 현상들은 이같은 평가를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
대우자동차 매각을 둘러싼 논란에서는 외국 메이저와의 제휴를 통한 생존보다 당장 시장점유율에 집착하는 업체들의 논리가 득세한다. 유럽측이 “한국 국유은행들이 보조금을 남발한다”고 트집을 잡는 터에 “대우차를 국유화하자”는 논리까지 등장했다.
국민은행 행장선임을 둘러싼 논란도 구조조정 ‘피로증후군’과 무관치 않다. 노조는 감독원 출신 인사의 선임을 ‘관치’로 못박았지만 수긍할 만한 증거는 보이지 않는다. ‘오이밭에서 갓끈을 고쳐 맨’ 당국의 미숙함도 문제지만 노조의 행동도 ‘소매금융을 해온 국민은행이 상대적으로 인력감축 여지가 많기 때문이 아닌가’라는 의심을 받는다. 은행권은 아직도 ‘내부인사가 행장이 돼야 한다’는 순혈(純血)주의를 고집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정부와 정치권이 피로증후군을 방치하거나 조장한다는 점. 유권자들에게 고통분담을 강요하는 2차 구조조정의 핵심과제는 대부분 총선 뒤로 미뤄졌다. 구조조정을 지휘해야 할 경제 부처에는 “탈이 날 일은 당분간 자제한다”는 기류가 엿보인다. 한국주식회사의 시계침은 다시 2년 전으로 돌아가고 있다.
박래정 ecopark@donga.com